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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천준범)

깡칡힌 2022. 11. 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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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한 마디로 착잡했다. 주식을 시작한 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막연하게나마 궁금했다. 왜 카카오의 쪼개기 상장은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는지,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 분할은 왜 하면 안 됐던 건지 등 외국의 자본 시장법 관점에서 바라보면 당연히 금기 시 되어야 할 행위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암묵적으로 자연스레 자행되고 있었다. 이 책이 내가 가진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읽게 된 동기는 그랬다. 이 책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의 비밀(여기서 재벌이라고 하면 재벌 기업이 아닌 재벌 가족을 말한다)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재테크 책처럼 투자나 전략, 또는 마케팅을 통해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나는 재벌이 아니지만 이 책에서 얘기하는 재벌이 돈 버는 매커니즘은 만약 내가 한국의 재벌이었다면 나도 그렇게 할 만큼 너무나 달콤하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만의 그룹에서 바보 취급 당하고 쉽게 돈 벌 수 있는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만 도덕을 지킨다면 그건 숭고한 걸까 미련한 걸까. 예를 들면 이렇다. 회사 지분 70%을 가지고 있는 회장이 따로 자신만의 회사를 별도로 만들어 7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납품하면 왜 문제일까? 어차피 부품은 누군가에게 납품 받아야 한다면 그게 회장의 회사라면 더 좋지 않을까? 납품 단가를 타 회사보다 더 비싸게 하니 문제라고? 그렇다면 여타 다른 회사와 계약했을 때와 차이가 없을 만큼의 공급 단가를 유지한다면 그것 역시도 문제가 되는 걸까? 이런 류의 방법이 재벌이 돈 버는 방법 중 하나이다. 법은 느리다. 시민사회나 주주들이 이런 행위가 전체 주주 가치를 훼손하고 회사에 큰 손실을 가져온다고 주장해봐야 현재 법은 회사의 이익과 회장의 이익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 혹여나 자본시장법이 개정되어 해당 행위가 범법 행위가 된다고 하더라도 재벌들은 다른 방법을 통해 손쉽게 돈을 번다.

사람의 선량한 의지를 믿어서는 안 된다. 도덕을 지키지 않을 시 얻게 되는 이익이 도덕을 지켰을 때 얻게 되는 이익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기 때문에 그들은 여타 다른 주주들의 손해를 감수하고도 반 자본시장적인 행위를 일삼는다. 그들이 주주들과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 얻게 되는 편익보다 그로 인한 손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서 그런 행위를 할 엄두를 못 내도록 법과 시스템으로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들을 두려워 하는 법과 시스템은 그들의 욕심에 비해 터무니 없이 느리기만 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