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2023

맬서스의 덫

깡칡힌 2023. 4. 7. 18:00

인류는 어떻게 지금까지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모름지기 올 수밖에 없는 시대였을까? 아니면 인류 역사의 긴 시계열로 봤을 때 아주 예외적인 시기에 불과할까? 잠시 시간을 옛날로 돌려보자. 언제쯤이냐고? 음.. 중세 시대쯤으로 가보자.

 

하람이는 농사를 지어서 먹고사는 집안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람이가 사는 마을의 구성원, 대부분은 농사를 지어서 생계를 유지하며 올해는 농사가 아주 잘 되어서 옆 마을로 수출도 할 예정이다. 수출로 가계 살림이 나아지니, 반찬이 바뀌기 시작한다. 풀때기만 먹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고기반찬 먹는 게 일상이 됐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니, 여가 시간이 늘어났고 이 여가 시간 덕분에 하람이네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더 뜨거워진다. 5남매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두 배가 되어서 10남매가 됐다. 하람이네 엄마, 아빠에게 자식들은 사랑하는 자식이자 동시에 소중한 노동력이다. 생산량이 많아진 것 역시 하람이를 비롯한 5남매가 열심히 도와준 덕이 컸다. 하지만, 이제 먹여 살여야 할 식구가 두 배가 됐다. 5명이었을 때는 나름 할 만했는데 10명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하니, 허리가 보통 휘는 게 아니다. 몇 명은 아직 일을 하기에 너무 어리다. 고기반찬의 과거의 영광이 됐다. 이제는 다시 시금치나 고사리에 익숙해져야 할 시간이다.

 

위 예는 맬서스의 덫을 잘 표현해 주는 일화다. 맬서스의 덫이란 생산량이 향상 돼서 각 가계의 삶의 질이 나아져도 각 개인들은 추가적으로 인구를 재생산하기 때문에 증가된 인구 때문에 그들이 누렸던 삶의 질이 다시 하락한다는 이론이다. 생산량 향상에는 한계가 있다. 농사를 지을 토지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안타깝게도 기술의 진보 덕분에 인구는 증가하되 더 부유해지진 않을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물이 이와 같은 '덫'에 걸렸다.

 

가장 발전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안다. '맬서스의 덫'이 사실이 아님을. 하지만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맬서스의 덫은 사실처럼 보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예외적인 걸까? 현대의 부모를 생각해 보자. 확실히 소득이 많고 집에 여유가 있으면 자식을 갖는 거 같다. 하지만 많아 봐야 2~3명이지 그 이상 낳는 부모들을 난 보지 못했다. 하람이네 부모와 현대의 부모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피임 가능 여부? 맞다. 그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피임 가능 여부가 중세 시대와 현대의 인구 구성 변화를 완벽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변화의 싹은 산업 혁명기에 발생했다. 산업 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노동자가 가져야 할 덕목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전까지 농사를 지을 때 가장 필요한 자원은 노동력, 즉 인구였다. 또한 농사에 필요한 지식수준이 그리 많지 않아 노동력들이 빠르게 실전 투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산업 혁명 시기 때는 물리 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 시대 노동력에게는 새로운 의무가 부과되었다. 회계를 위한 수학 지식, 기계를 다루기 위한 지식, 생산 관리 지식 등 비교적 알아야 할 게 많아졌다. 그래서 이 당시 부모들은 많은 자식에게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졌다. 

 

교육의 대상 역시 확대됐다. 대부분의 인류사에서 교육은 특권층만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산업 혁명기에는 문해력(인류사 대부분의 시간에서 문해력은 보잘것없었다)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노동력이 갖춰야 할 지식과 정보가 확대됐다. 그래서 특정층만을 대상으로 하던 교육 역시 일반 계층까지 확대돼 공교육이라는 개념이 이때 처음 생겼다.

 

자, 정리해 보자. 맬서스의 덫에 따라 기술 진보에 따라 생산량이 증가하더라도 그에 따른 인구 증가라는 반작용으로 인해 인류 대부분의 삶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이로 인한 변화는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시대와 지역에서 그리고 모든 문명에서 예외 없이 더 많은 기술적 진보를 낳았지만 생활수준만은 그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른 종처럼 인류 역시 빈곤에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노동자의 수요가 크게 바뀌었다. 교육받은 노동자라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요구되었던 사회적 필요(문해력, 기초 지식 습득)에 의해 인구 증가는 자연스레 억제되었고, 억제된 인구 덕택에 인류의 삶의 질은 향상되었다. 나는 궁금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번영이 전체 인류사에서 조망했을 때 예외적인 경우인지. 하지만 예외적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조금 일러 보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갑자기 도래한 게 아니다. 생산량 향상이라는 작용과 인구 증가라는 반작용이 만나 씨름하면서 축적된 기술들이 산업 혁명이라는 티핑 포인트를 만나 이르게 된 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다. 역사는 우상향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