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2023

비트의 세계

깡칡힌 2023. 4. 9. 12:41

잡념이 많은 오전 시간이었다. 그 잡념이 생산적인 잡념이면 좋겠건만 어제 본 밤에 본 원피스 만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밤에 책 읽고 자야지, 책 읽고 자야지 결심했음에도 잠자기 전까지의 내 시간은 원피스라는 만화를 보거나 유튜브 같은 유희를 즐기는 데 사용했다. 후회한다. 분명 내일 아침에 후회할 걸 알고 있음에도 지금 행동에 대한 후회를 미래로 이연시킨 뒤 쾌락을 즐겼다. 그 시간 동안 내 마음은 쾌로 가득 찼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행복을 쾌락의 범주에 분류할 수 있다면 그 순간에 나는 행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잘한 일인가라고 묻는다면 후회라는 감정(이 후회의 감정 역시 사회가 "너 그렇게 살면 안 돼!"라며 내게 주입한 생각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을 느끼는 거 보니 잘한 행동은 아닐 터. 하지만 쾌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행동은 합리적이다. 뇌는 미래의 쾌의 크기를 가늠하는 데 익숙지 못하기 때문에 당장의 쾌에 집중한다. 저녁에 야식을 먹지 않는다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이익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지키는 건 매우 힘든 것만 봐도 뇌는 당장의 칼로리, 눈앞의 달콤함의 유혹을 이기는 데 특화되지 못했다. 나 역시 그런 사례이다. 유튜브나 원피스 같은 일회성 쾌락을 미루고 책을 읽는 행위를 채택한다면 장기적으로 나의 이익은 극대화됨을 알고 있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뇌는 추상적인 이익을 가늠하는 걸 잘하지 못한다. 오전 시간 동안 내 정신은 여전히 원피스라는 만화에 머물고 있었다. 알고리듬 문제를 풀 때도, 텍스트를 읽을 때도, 나는 몰입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단기 쾌락성 자극을 멀리할 수 있을까? 이런 유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녀석들은 마약과 같다. 한 번 빠져들면 멀리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멀리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나는 이미 준 중독 상태에 이르렀다. 핸드폰을 꺼야 하나? 그것도 해봤지만 쉽지 않다.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거라고, 나의 느낌과 후회의 감정을 이런 빈 공간에 배출함으로써 의지를 다잡는 것뿐이다. 이런 행동을 억제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해 놓았다만 이따금 발동되는 강력한 본능의 힘을 이기기는 어렵다. 이런 젠장!

 

가만, 그런데 사람들은 왜 온라인에 세계 즉 비트의 세계에 머물까? 아무리 비트의 세계가 커졌다 하더라도 우리의 육체는 여전히 아톰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간은 점점 아톰의 세계에서 비트의 세계로 옮겨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 같은 경우는 아톰의 세계에서 나에 대한 대우가 그리 좋지 못해서이다. 아톰의 세계에서 나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을뿐더러 자원 접근 권한도 아직 없다. 그에 반해, 비트의 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나의 선택권이 넓어진다.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고, 가상의 인물들과 소통할 수도 있고, 매력적인 이성과 자위도 가능하다! 그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온라인 세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아톰 세계에서의 삶이 변변치 못하거나 자원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 이들, 그래서 그런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거 같다. 아톰 세계의 자원은 한정적인데, 반해 비트 세계의 자원은 무한대니 말이다. 이 경향은 앞으로 더 심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온라인 세계로 도망치는 게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톰 세계에서 자원은 항상 한정됐고 그 자원에 대한 접근 권한 역시 매우 한정된 사람만 차지했다. 즉,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주인공들을 위한 들러리는 항상 존재했다. 우리는 들러리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비트의 세계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자원도 무한대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비트의 세계는 이런 들러리들에게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찜찜하다. 그 유토피아는 뭔가 가짜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이 역시 아톰 주인공들이 우리에게 주입한 이념이 작용한 결과일까? 아톰 세계의 사람들에게 비트의 세계에서 많이 머무는 사람은 열등하다고 인식되니 말이다.

 

p.s. 쉼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매우 부럽다. 그들을 모방하고 싶다. 그게 가능하다면 나의 미래는 더욱 풍부해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