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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Atif Mian, Amir Sufi>, House of Debt: How They (and You) Caused the Great Recession, and How We Can Prevent It from Happening Again)

깡칡힌 2023. 5. 14. 20:08

House of Debt

언젠가부터 미디어에서 가계 부채와 관련해 '한국 가계부채 매우 심각.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난다.' 같은 다소 자극적인 단어로 버무려진 표현들이 심심찮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소득이 없어 부채란 단어에 그리 민감하지도 관심도 없었지만, 요 근래 우리의 삶을 강타한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초스피드(?) 금리인상으로 더 이상 부채는 나와 무관한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됐다. 내가 가진 부채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으나 나의 부모가 진 부채의 크기는 꽤 거대했다. 그래서 금리가 낮을 때 우리 집의 소비는 꽤나 풍요로웠으나 이렇게 금리가 높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올라버린 현 금리 상황에서 내가 속한 가계의 소비 상태는 급속도로 가난해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우리 집은 소득이 거의 없고, 자산에서 나온 이자나 배당에서 이자를 제외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요놈의 이자가 몇 배 불어난 탓에 몇 달간 긴축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때 알았다. 우리 집의 부는 빚으로 이룬 것임을. 그리고 경제 불황이나 금리가 오른다면 그 부는 언제 듯 모래성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부채에 대해 알고 싶었다. 가계 부채가 위험하다고 하는데 왜 위험하다는 것인지. 그래서 이 책을 집었다. 이 책은 어렵다. 하지만 재미있다. 2014년에 출판된 책임에도 현재에 적용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잘 쓰인 책이다. 

 

저자들은 가계부채가 왜 위험하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정확히 우리 집이 요 근래 겪고 있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주식과 달리 주택을 구입할 때 그 전액을 현금 박치기 하는 사람은 전지현 씨 같은 사람 빼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 부족한 금액을 대출받아 주택을 구입한다. 예를 들어, 내가 10억짜리 집을 구매한다고 하자. 그런데 내 수중에는 2억밖에 없다. 하는 수 없이 은행에서 8억을 대출받아 10억 원짜리 주택을 구입했다. 이때, 주택에 대해 내가 가진 순 자산은 2억이고 8억은 빚이다. 자, 근데 거품이 터지거나 혹은 경제 불황이 와서 주택 가격의 20%가 떨어져서 8억이 됐다고 하자. 그럼 내가 이 주택에 가진 순 자산 2억은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모기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모기지 8억을 여전히 갚아야 한다. 나의 순자산은 100% 감소했다. 바로 레버리지 효과 때문에 말이다. 갚아야 할 대출액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채무 불이행으로 집을 압류당하든, 과도한 빚을 갚아 나가든 내 소비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집처럼 말이다.

 

소비의 감소는 경제 불황을 불러온다. 누군가의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이다. 감소한 소비 탓에 기업들은 투자를 감축한다. 이 감축분에는 직원들의 임금도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즉, 가계 부채의 증가는 가계 지출의 감소로 이어지고 연쇄 효과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종국에는 경제 불황으로 이어진다. 이 불황의 충격은 온전히 저소득층 몫이다. 2000년 대 터진 닷컴 버블 역시 경제 불황으로 이어졌지만, 2008년 터진 금융 위기와 그 영향은 사뭇 다르다. 자산이나 부채의 분배 상태 역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주 거품 붕괴의 충격은 주로 주식 투자를 하던 상대적 고소득층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이미 주택과 금융 자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계층이었다. 반면, 주택 시장 거품의 붕괴는 빚을 내서 집을 샀던 저소득층에게 큰 타격을 입혔는데, 이들에게는 주택 말고는 다른 자산이 없었다. 하지만 거품 붕괴로 인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주택의 순 자사분도 그대로 삭제됐다. 이것이 바로 기술주 거품 붕괴보다 2008년에 발생한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주고 회복세도 더딘 이유이다. (2014년에 나온 책임에도 2023년 한국에 적용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명저다)

 

금융 전문가들은 2008년에 발생한 금융 위기의 원인을 금웅 중개 기능의 악화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그 처방 역시 구제 금융과 양적 완화와 같은 금융 중개 기능 강화에서 찾았다. 하지만 저자들은 금융 중개 기능 강화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부채를 직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현재의 채무 방식은 채무자에게만 그 부담이 너무 쏠린 탓에 경제 위기가 한 번 발발하면 그 여파가 상상 이상의 파급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채무자의 채무 부담을 채권자에게 부분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쯤 되면 다음과 같은 비판이 들린다. "자기들이 빚내서 투자해놓고 망할 때 되니까 같이 고통 분담하자고? 세상 참 편하게 산다. 막말로 집값 오르면 세금이나 이자 더 낼 것도 아니면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무리한 대출을 일으켜 생긴 빚까지 왜 내가 부담해야 하지?" 일견 타당해 보이는 비판이다. 아니 너무 강력한 비판이다. 하지만 거품 붕괴로 인해 총수요가 감소하면 결국 채권자들 역시 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주택으로 예를 들면, 10억 주택을 구매하는 데 8억을 대출해 주고 나중에 경제 불황이 와서 해당 주택의 소유권이 채권자에게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 주택을 온전히 8억에 팔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닐 것이다. 채권자들은 헐값에 그 주택을 매도하고 그 여파로 주변 주택의 평균 시세 역시 떨어진다. 그렇게 불황은 시작된다. 그러니 도덕적인 비난은 잠시 내려두고 경제 전체에 이득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자. 저자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책임 분담 모기지(Shared Responsibility Mortgage)다.

 

책임 분담 모기지는 기존 모기지에 주식의 성격을 부분적으로 가미한 대출을 말한다. 즉 집값 상승으로 이득이 발생했을 때는 채권자와 이득을 공유하고 반대로 집값이 하락했을 때는 채무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채무자에게 채무의 하방 방어선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해 집값의 기준은 개인 집값이 아닌, 개인이 개입할 수 없는 지수(예를 들어 주변 집값 지수나 평균 집값)등을 기준으로 한다. 채권자 역시 무분별한 대출(채권자의 무분별한 대출 역시 2008년 금융 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목받는다)을 하지 않을 유인이 생기기 때문에 대출 건전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솔직히 말해서 책임 분담 모기지는 우리가 여지까지 경험해본 모기지론 와 너무 달라서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 부호가 남는다. 왜냐하면 빚이란 건 무조건 갚아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각인됐고 투자는 본인 책임이라는 논리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이 책의 가치는 책임 분담 모기지 같은 대안 제시라기보다는 저자들의 가계 부채가 왜 문제라고 진단했는지 그 사고의 프로세스를 경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 같은 경제에 무지한 이들도 읽을 수 있을 만큼 도표나 어려운 용어가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핵심 주장 면면에는 다양한 사례와 연구들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그리고 이들의 생각을 멀리서지만 책으로나마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자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