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 디플레이션 && 노약자 || 아이 -> 인플레이션
성인은 디플레이션적 존재이고, 노약자나 아이는 인플레이션적 존재다. 무슨 말이냐고? '성인은 디플레이션적 존재다' 이 말의 뜻부터 알아보자. 보통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면 회사에 취직을 하든, 본인이 회사를 차리든가 해서 경제 활동을 시작한다. 경제 활동의 근본은 생산이다. 우리는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여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다. 이제 고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회사 사장은 왜 당신을 돈을 주면서 일을 시킬까? 당신의 월급이 월 500만 원이라고 해보자. 사장 입장에서 월 500은 꽤나 출혈이 큰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신을 고용했다. 왜일까? 바로 당신이 월 500만 원 이상의 생산활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당신은 그럴 능력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라. 조만간 당신의 월급이 내려가거나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자,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와보자. 노동자는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활동이다. 여기서 생산이라고 하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이들은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다. 이들은 소비량은 제한돼 있다. 자신이 생산하는 것 이상의 소비 경향성을 보이는 이는 소수일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당신이 신발 공장 노동자라고 해보자. 하루에 당신의 손을 거쳐서 탄생하는 신발이 족히 500켤레 이상이다. 그런데 당신의 하루 신발 소비량은 어떻게 되나? 하루에 500켤레 사본 경험이 있나? 아니, 한 달에 한 켤레 사기나 할까? 즉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소비하기 여간 쉽지 않다.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높을 수밖에 없다. 성인(노동자)은 디플레이션적 존재다.
'성인은 디플레이션적 존재다' 이 말을 이해했다면 노약자나 아이가 인플레이션적 존재라는 말도 이해할 수 있다. 노약자나 아이들은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살핌과 지원이 필요한 존재다. 그리고 그 지원은 성인들의 생산활동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30~40년 동안 인플레이션은 사회 탐구에서만 배웠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촉발한 대규모 양적완화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인해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나라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 상승률은 100%가 넘었고 기준 금리도 97%로 올렸다고 한다)
당장은 인플레이션이 코로나19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크지만 앞으로의 세계는 어떠할까? 지난 40년 동안 우리가 물가 걱정 없이 소비한 이유는 물건의 가격, 즉 물가 자체가 터무니없이 저렴한 까닭이었다. 그 말인즉슨 노약자나 어린이보다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성인 계층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세계의 성장은 갈수록 저해되고 있고 성장이 저해되면 사람들은 출생을 기피한다. 출생이란 앞으로의 세계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찬 전망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 말이다. 비단 이런 이유들이 아니더라도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는 한계가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행성에 80억의 인구는 너무 많다. 80억의 두 배 그러니까 인구가 160억이 된다면 인류는 절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류는 자생적으로 출생률을 제어하거나 제어당하기 시작했다. 지금 각 나라가 출생률을 올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을 동원하고 있지만, 이는 급격한 출생의 감소 때문이지 지금의 인류 수보다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함이 아니다.
고로 내 의문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서 지금까지 누렸던 값싼 물건을 다시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세계가 인류 역사 중 비정상의 시기라고 기록되지는 않을까? 파티는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P.S. 나는 왜 이리 비관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