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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대학진학률이 매우 높은 나라이다. 성공(성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대부분 성공이라고 하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확률을 가장 확실하게 높여주는 수단이 교육임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 걸까? 아니, 더 근본적으로는 왜 공부를 해야 했던 것일까? 나 같은 경우에는 그 이유를 학창 시절에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좋아서 놀았고, 고3이 되자 분위기, 즉 환경이 달라져 공부를 시작했다.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 따위는 고민해보지도 않았다. 그냥 남들이 하길래 했다. '남들이 하길래 했다.' 이 말은 사실이면서도 거짓이다. '남들이 하니까 했다'는 말 이면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딘가에 소속되고픈 욕구가 있다. 나 역시 그 당시에는 내게 가장 중요한 준거집단이자 소속되고픈 집단은 바로 주변 또래들이었다. 몇 년 간 친구라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행동해 왔는데, 고3이 되니 그들 대부분이 공부를 전부 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친구 무리의 일원으로서 공유하는 가치 중에는 공부는 없었다. 굳이 꼽자면 게임, 스포츠같이 놀이와 관련된 행위가 전부였다. 하지만 고3이 되자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 무리에서 도태될 것 같았다. 공부가 내가 속한 집단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서열이 바뀐 것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거 같기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을 거 같은 암묵적인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 당신이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부모님이 하라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나이대에 맞는 역할 모델이라는 게 있다. 즉, 10대는 공부해야 하는 시기며, 20대 중후반은 취업을 해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내 친구들 대부분은 일자리를 얻어 일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지금 이 시간에도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행위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사고를 더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참 청개구리 같은 놈이다. 하라고 하면 하지 말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는 청개구리 말이다. 성인이 되고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하라는 취업은 안 하고, 내가 왜 공부를 했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등 이런 걸 고민하고 있다. 조금 더 빨리 고민했어야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런데 가만, 고민을 계속하다 보니, 이런 의문이 생겼다. 왜 우리는 취업이란 걸 해야 할까?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형태가 왜 타인의 시스템에서 내 노동력을 제공해서 돈을 받는 형태여야만 할까? 즉, 왜 우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노동자라고 규정짓는 걸까? 아마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기도 하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를 조망해 보면 교육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직장인이 되기를 전제하고 교육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대중교육의 목적이 노동자 양성이었다. (갈수록 늘어가는 노동자 수요에 자본가들이 정부에게 요청한다) 노동자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할 기초 지식을 사전에 함양해야 더 효율적으로 노동자들이 일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여정>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시라) 즉, 우리의 교육은 그 태생이 노동자 양성이 목적이다. 지금은 그 콘텐츠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였으나, 그 학교 교육의 탄생 이념은 아직까지 잘 지켜지는 듯하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노동자 양성 교육 방식은 꽤나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왜 우리는 성인이 되고 나서, 대부분 직장인이 되는 걸 선택할까? 더 리스크가 적기 때문에? 안전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직장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업을 만들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단인 것일까?
사실 내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내가 높은 가치를 지닌 직장인이 될 수 없는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함이다. 직장인이 되지 못했으니 직장인이 된 이들을 부정하고 잘못된 길에 들어선 이들이라고 깎아내리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상처 입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즉 나는 현재 자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된 것, 나는 한 번 내 업을 만들어서 노동을 해보련다. 직장인이 돼서, 남이 만든 시스템에서 노동력과 돈을 바꾸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가 않는다.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내가 업을 만들어서 생계 활동을 하는 일, 못할 건 또 뭔가? 두려운 것도 사실이고, 내 능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꿈 한 번 꿔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