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2022

2022.09.21 Wed

깡칡힌 2022. 9. 21. 23:32

23:10 - 예비군 훈련

예비군 훈련이 있는 날이어서 아침 일찍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대중교통을 타고 가려고 했지만, 출근 시간이라서 차가 막힐 수 있다는 점,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알게 모르게 길 탐색 시간이 생각보다 크리라는 점 때문에 엄마에게 태워달라고 했다. 1시간 30분 일찍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차가 너무 막혀서 9시 5분 정도에 도착했다. 9시까지 입소지만 예전에는 융통성을 발휘해줘서 많이 봐줬지만, 요즘은 칼같이 9시 이후에 온 예비군들은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가는 내내 불안했다. 하지만 다행히 9시 이후에 온 예비군들도 입소시켜줘서 일단 한시름 놨지만 먼길까지 이렇게 데려다 준 엄마에게 미안하면서도 대게 고마웠다(공교롭게도 차를 판매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이렇게 장거리 운전할 일이 생기다니!).

훈련은 총 3개를 받았는데, 예비군 2년 차지만 작년은 코로나로 인해 면제돼서 사실 상 처음해보는 거였다. 그래서 많이 긴장됐다. 되도록 튀고 쉽지 않았고 남들 앞에 서는 역할은 피하고 싶었다. 유전자의 오작동이 여지 없이 발휘됐다. 나는 가까스로 2번이라는 번호를 할당받았고(1조에 1번부터 20번까지 있다) 1번을 할당 받은 사람은 분대장 역할을 수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대장이라고 해서 딱히 하는 게 있지는 않았지만, 처음에 시가지 모의 전투 훈련을 할 때, 20명의 사람 앞에서 분대가 사용할 전술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그 순간이 너무 불안했다. 내가 분대장은 아니었지만,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떨지 않고 잘 말할 수 있을까? 두렵고 불안했다. 내가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아서 매우 다행스러웠지만 한 편으로는 대게 씁쓸했다.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하고 말이다. 이 감정(?)은 클루지라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두려웠다. 나와는 다르게 그 분대장 역할을 하는 예비군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했고, 멋있었다(쉬는 시간에 카톡 하는 게 보였는데, 방송국 일을 하는 사람인 거 같았다). 그 사람은 어떤 경험을 했기에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떨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나였으면 얼어 붙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 같은데. 아무튼 부럽고 그 사람의 그런 점을 닮고 싶었다.

예비군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유럽 여행을 하면서 귀찮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코로나 3차 백신도 접종 받고, 할머님 집에 방문해서 빵도 사다드렸다. 내 돈으로 누군가의 집에 방문해서 선물(?)을 주고 오니 어른이 된 거 같았다(아직 내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ㅋㅋㅋ). 여하튼 오늘 하루는 대게 활동적인 일을 많이 한 거 같아서 뿌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예비군 훈련 시간 동안 대기하는 시간에 독서를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책을 가져가는 건 조금 오바더라도 e-book이라도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