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의 정의 (고민된다)
당신은 투자자인가 트레이더인가. 가치투자를 지향한다는 사람들은 막연히 트레이더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냥 남의 돈을 뺏어오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 주장은 옳다. 주식 시장은 기본적으로 제로섬이다. 트레이더가 돈을 벌었다는 건 다른 누군가가 돈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얼핏 보면 도박장에 들어선 승률 좋은 도박사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투자자들은 하는 게임은 제로섬이 아닌 것일까?
사실 아직 결론 내리지 못한 부분이 있다. 투자라는 정의가 두 가지로 나뉘기 때문이다. 당신이 치킨집을 차린다고 해보자. 근데 가게를 차릴 돈이 부족하다. 그래서 당신은 나에게 매장 차리는 돈을 투자해 주면 그 투자금만큼 가게 지분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매장 운영하면서 나오는 수익을 지분율대로 배분하자고 주장한다. 나는 치킨을 좋아한다. 그리고 꽤나 괜찮은 제안 같아 보여 선뜻 내 돈을 투자해 준다. 주식회사로 말하면 내 돈을 출자해 주고 출자금만큼의 회사 지분을 담보해주는 권리인 주식을 대가로 받는다. 그리고 치킨집은 오픈 후에 꽤나 장사가 잘 돼, 나는 한 달마다 지분율만큼 꽤나 짭짤한 이익금을 분배받는다. 이것을 주식 시장에서는 배당이라고 한다. 자, 여기서 내가 생각한 투자의 첫 번째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내 자본을 회사에 출자하고 그 돈을 굴려서 발생한 이익을 지분율만큼 공유받는다.
이번에 당신은 주식 시장에 투자를 하려고 한다. 주식은 잘 모르겠고, 아는 형이 1년 치 회사 이익의 10, 즉 10년 치 회사 영업이익의 합이 그 회사 시가 총액이 되면 적절하다(가정이다)고 한다. 그래서 주식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당신은 이 기준을 갖고 투자하기로 한다. 목표는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삼성전자다. 그런데 삼성전자 주가를 보니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당신이 세운 기준에 의거하면 너무 저렴해 보인다. 보통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은 현재 발생하는 이익의 10년 치 곱해야 시가총액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이익의 5년 치만 곱해도 충분히 시가총액이 나온다. 즉, 당신은 회사의 가치보다 주식의 가격이 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신은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한다. 그리고 3년 뒤, 삼성전자 시가총액을 보니, 시가총액이 1년 치 이익의 15번, 즉 15년 치의 영업이익을 곱해야 시가 총액이 나왔다. 회사의 이익도 올랐지만 그보다 주가의 상승곡선이 더 가팔랐던 탓이리라. 주식의 가격이 회사 가치보다 비싸다고 판단한 당신은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하고 시세 차익을 얻는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두 번째 투자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2. 회사 가치보다 주가가 싼 주식을 사서 회사의 가치보다 주가가 비쌀 때 매도해 시세 차익을 추구한다.
헷갈린다. 투자의 정의는 1번일까, 아니면 2번일까?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1번이 더 적절해 보인다. 2번을 투자의 정의로 생각하면 투자가 제로섬 게임이 된다. 그래서 심적으로 편하지 않다. 2번을 투자의 정의로 간주하면 왜 투자가 제로섬이냐고? 내가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내 주식을 그 가격에 사줬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주식이 발행된 이후로 나를 포함해 내게 주식을 사간 사람의 손에 오기까지 한 번도 안 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즉, 나를 포함해 삼성전자 주식을 구매하고 팔았던 이들은 매수한 가격보다 매도한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전부 시세차익을 얻었다. 그리고 내게 구매했던 사람 역시 아직 주가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손해 본 사람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간과하는 게 있다. 내게 주식을 산 사람은 아직까지 돈을 잃지도 않았지만 벌지도 않았다. 그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 주식을 더 비싼 가격에 사줘야 한다.
# 주식 시장은 제로섬인가, 플러스섬인가.
주식 시장이 성장한다는 것은 전체 판돈이 커진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내가 당신과 도박으로 내가 가진 돈을 전부 잃었는데, 당신에게 집에서 돈을 더 가져올 테니 여기 꼼짝 말고 앉아 있으라고 한다. 자, 내가 가진 전세금이 도박장에 추가적으로 공급됐다. 즉 판돈이 커졌다. 하지만 전체 판돈의 합은 결국 나와 당신의 전재산이 아닌가?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내게 주식을 비싸게 산 사람은 반드시 그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아야 돈을 번다. 즉, 손해는 다음 사람으로 이연 돼서 그 정산이 시간차를 두고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는 주식 시장이 제로섬이라는 것을 간과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주식 시장은 제로섬이 아니다. 오히려 마이너스섬이다. 주식을 매수, 매도하면서 발생한 거래세와 수수료, 그리고 맨 처음 회사로부터 주식을 발행한 사람은 자기 돈을 회사에 출자하고 주식을 받았기 때문에 주식 시장에서 돈이 회사로 빠져나갔다. 그래서 수수료, 거래세, 맨 처음 자본을 출자한 사람의 자본 등을 합하면 주식 시장은 제로섬이 아니라 마이너스섬이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 시장은 제로섬이 아니다. 위에서 주식 시장이 마이너스섬이라고 한 근본적인 이유는 제로섬이라면 주식 시장 내에서 돈이 움직이고 그 합은 항상 같아야 하지만 몇 가지(거래세, 수수료, 맨 처음 출자한 자본) 이유로 주식 시장의 자본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마이너스섬이라라고 했다. 즉, 핵심은 주식 시장의 자본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모든 증권사가 벌어들인 거래 수수료로 주식 시장에 투자할까?) 하지만 반대로 다른 곳에서 주식 시장으로 자본이 유입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유입 때문에 주식 시장은 제로섬이 아니다. 바로 배당 때문이다. 배당은 주식 시장 자체에서 발생한 돈이 아니라 회사가 벌어 들인 돈을 주식 시장으로 공급해 주기 때문에 주식 시장은 제로섬이 아니다. 즉, 주식 시장이 아닌 곳에서 주식 시장으로 추가 자본이 유입됐다. 마찬가지 이유로 회사의 자사주 매입 행위 역시 주식 시장이 제로섬이 아니게 만든다. 회사는 자기 자본을 사용해 주식 시장에서 자사주를 매입한다. 이 역시 다른 곳에서 주식 시장으로 자본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은 그 행위의 본질이 근본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주식 시장이 아닌 곳에서 주식 시장으로 자본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주식 시장은 제로섬이 아니다. 자본이 나가기도 하지만 그 유입의 양이 더 크기 때문이다.
# 투자자(투자의 정의를 2번으로 정의 내렸을 때)와 트레이더의 포지션 차이 (당신은 투자자인가, 트레이더인가, 아니면 호구인가?)
투자의 정의를 2번으로 가정하고 투자자와 트레이더의 차이를 알아보자. (이 두 플레이어 간에 입장 차를 알고 내가 어떤 포지션에 서 있는지 인지하는 것은 투자를 할 때 매우 중요하다) 가격과 가치는 다르다. 트레이더에게 그 회사의 가치는 중요치 않다. 그들이 관심 갖는 건 오직 가격이다. 주식회사에서 가격을 보면 그 회사가 싸다, 비싸다를 얘기할 수 없다. 가치와 비교를 해야 그 회사 주식이 싸다, 비싸다를 논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트레이더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시장 참여자들이 사려고 하는지, 즉 수급이 중요하다. 그래서 트레이더들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특정 주식이 인기가 상승할 때, 수급이 좋을 때 트레이더들은 주식을 매수해, 사람들이 매수세 지속돼 가격을 올라가면 그때 되판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이더는 가격이 오를 때 주식을 매수한다. 투자자들은 주가가 싸다, 비싸다를 얘기하지만 트레이더는 가격이 오른다, 내린다라고 말한다. 왜냐, 그 비교 기준이 이전 가격이기 때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쌀 때 사는 게 맞고, 트레이더 입장에서는 가격이 오를 때 사는 게 맞다. 그들은 다른 포지션에 있는 플레이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치투자가 맞냐, 단타가 맞는지 묻는 건 잘못됐다. (투자자는 분명 기업 가치가 주가보다 싸 주식을 매수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빨리 가격이 가치 레벨까지 도달해 주식을 팔았다고 하더라도 그 처음과 끝의 시간 간격이 상대적으로 짧아 행위적으로 보면 단타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투자가 맞냐, 트레이딩이 맞는지 물어보는 게 더 적절하다. 당신은 투자자인가, 트레이더인가.
투자자들은 기압의 기대 이익(가치)을 보고 주식을 사서, 기업 가치가 오르면 주식을 매도한다. 그때 주식을 사는 건 누구인가? 트레이더, 투자자, 아니면 호구 이 세 명 중 한 명이다. (주식 시장은, 트레이더, 투자자, 호구 이 세 명으로 구성돼 있다) 투자자들은 가치가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해 가격이 가치보다 오를 때 매도한다. 이때 주로 사는 건 트레이더 혹은 호구다. 기업의 관심도가 높아졌으니 말이다. 그럼 트레이더는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렇다. 그들도 돈을 번다. 그렇다면 그들이 산 주식은 누구한테 되파는가? 바로 호구들이다. 주식 시장에는 쌀 때 사지 않고 비싸게 사는 호구들이 있다. 주식 시장은 배당이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투자자와 트레이더들은 호구들의 돈을 가져와 돈을 번다.
반대로, 가격이 떨어질 때를 생각해 보자. 먼저 투자자 입장이다. 투자자들은 분명 기업 가치보다 주식이 가격이 싸기 때문에 주식을 매수했는데, 가격이 더 떨어진다? 그들에게는 땡큐인 상황이다. 그들은 주식을 더 매수한다. 더 싸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엔 트레이더 입장을 가보자. 주가가 떨어지면 트레이더들은 빠르게 손절매를 해야 한다. 그들의 판단 요소는 오로지 가격뿐이데, 그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트레이더의 기본 원칙은 빠른 손절매다. 트레이딩의 원리는 높은 확률을 오래 지속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내가 당신과... 그래 포커를 친다고 해보자. 우리 둘은 실력이 엇비슷해 우리 둘의 승률은 정확히 50:50이다. 즉, 내가 당신에게 이겨 돈을 딸 확률은 50%이다. 하지만 당신이 오기 전에 내가 카드 몇 장에 그 카드가 무슨 카드인 줄 알 수 있게 장난질을 했다고 하자. 그럼 나의 승률이 조금이지만 상승할 것이다. 카드 장난질로 인해 내 승률이 50%에서 음... 그래 55%가 됐다고 하자. 그럼 내가 당신과 한 판 할 때, 내가 돈을 딸 확률은 55%가 다. 압도적으로 높은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단 한 판으로 내 전재산을 걸기에 55%라는 확률은 꽤나 위험해 보인다. 그런데, 이 포커 게임을 밤새도록 지속한다면? 아침이 되면 나는 당신의 돈은 전부 내 주머니로 옮길 수 있다. 즉 단 한 판으로는 매우 위험해 보이지만이 행위를 반복하면 결국 상대적으로 높은 기댓값을 지닌 쪽이 상대방의 돈을 전부 따게 돼 있다(확률이 반복되면 나는 100으로 수렴하고 당신은 0으로 수렴한다. 카지노도 정확히 이런 원리로 운영된다). 단,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의 사항이 한 가지 있다. 절대 단 한 판으로 내 전재산을 걸면 안 된다는 것이다. 중간에 오링(도박에서 쓰이는 말로, 가진 돈을 모두 잃었다는 뜻이다. 'All-in'에서 유래되었다)이 나면 나는 게임에 참가할 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자, 다시 트레이더의 입장으로 돌아와 보자. 그들은 우선 주가가 오를 확률이 51% 이상인 지점을 찾아야 한다. 자신들에게 50%를 조금 상회하는 게임을 하기 위해 말이다. 그들이 한 번 투자해서 벌 확률은 50%가 조금 넘지만 이 행위를 계속 반복하면 그들은 돈을 번다. 이제 트레이더가 단타를 치는 이유를 이제 알겠는가?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그 횃수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게임을 반복해야 돈을 번다. 단지 주의할 점은 위에서 말했지만 중간에 오링 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트레이딩을 100번 반복한다고 했을 때 51번 연속으로 돈을 벌 수도 있겠으나 최악의 경우에 49번을 전부 주가가 떨어진다면? 그래서 내가 가진 돈을 전부 잃게 된다면? 그들이 이후에 남은 51번의 주가가 오를 기회 역시 전부 잃게 된다. 그래서 손실을 짧게 가져가야 하는 게 트레이딩에서 매우 중요하다. 질 거 같은 게임에는 빨리 털고 나와라!
하지만 승률이 51% 이상이어야만 돈을 딸 수 있는 건 아니다. 승률이 20% 일 경우에도 돈을 딸 수 있다. 내가 이길 확률이 높은 판에 베팅액을 늘리고 그렇지 않은 판에는 조금만 베팅을 하는 것이다. 즉, 총 100번의 게임 중 80번이 진다고 하면 그 게임에서는 10%만 잃고 나머지 20번의 승리에서는 2배를 먹으면 된다. 80번 지면 800%를 잃겠지만 20번의 승리에서 두 배씩 먹으니까 2000%를 먹을 수 있다. 중간에 오링만 안 나면 결국에는 돈을 딴다. 그래서 트레이더에게 중요한 것은 승률과 손익비다. 내가 게임에 이길 확률도 중요하고 이겼을 때 몇 프로 먹고 질 때 몇 프로 잃을지 말이다. 이길 때 10%, 질 때 10%라면 그러면 승률이 50%를 넘어야 한다. 반대로 이길 때 50% 먹고 질 때 10%만 잃는다. 그럼 승률이 50%가 안 돼도 돈을 벌 수 있다) 다시 강조한다. 질 때 입게 되는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손절이 중요하다.
어떤 이는 떨어질 때 사야 된다고 그러고 어떤 이는 팔아야 된다고 그런다. 둘의 주장은 서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말이 맞는가? 둘 다 맞다. 그들은 각각 다른 포지션에 위치한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신의 포지션을 인식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투자자의 주장과 트레이더의 주장이 서로 배치된다고? 그렇다면 당신의 포지션은 호구, 즉 주식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주식 시장에 참여했을 때, 돈을 벌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신의 포지션, 즉 당신이 투자자인지 트레이더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해당 포지션에 맞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의 주식 시장에는 가치 투자자를 표방하면서 실제 하는 행동은 트레이더인 사람이 너무나 많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들을 호구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