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달 간 내 일상은 예측가능한 하루의 반복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알고리듬이나 SQL 문제를 풀고 책을 읽고 집에 가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런 일상을 보낸 지는 꽤 되었다(현실로부터 도망친 지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제 참여했던 용인 지역주택조합 현황 설명회(?)는 나의 하루에 발생하기 힘든 낯선 경험을 제공하는 행사였다. 비록 안타까운 행사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자리는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그러자면 지역주택조합에(일명 지주택) 대해서 알아야 한다. 지역주택조합은 지역민들(사실 따지고 보면 지역민들도 아니다. 그냥 무주택자들이라 통칭해도 좋을 듯하다) 중 무주택자들이 주택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조합을 이룬 뒤, 조합원들 각자가 자금을 출자해 공동의 자금으로 토지를 산 다음 그 땅에 싼 가격에 주택을 지어서 취득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성공만 한다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만 한다면' 남는 장사이다. '성공만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성공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지난하고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아파트 공사는 건설 사업 중에서도 비교적 대규모 사업이다. 이말인 즉슨, 대규모의 토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대규모 토지를 특정 단체나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면 이미 거기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합은 주인이 각각 제각각인 땅주인을 설득해 아파트 단지가 건설될 만큼의 토지를 확보해야 한다. 듣기만 했는데도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지역주택조합은 그 성공률이 매우 낮아서 이 구조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꺼려하는 주택 취득 방법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을 포함한 조합원들은 그 어려운 길을 택했다. 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니 말이다.
앞서도 말했던 바와 같이 지역주택조합은 성공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주택을 취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저렴한가? 그 이유는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포함돼 있는 비용의 일부(광고 홍보비, 토지 금융비, 시행사 이윤) 등이 빠지기 때문이다. 즉, 서민들이 지역주택조합을 찾는 이유는 광고 홍보비 시행사수익, 토지금융비 등이 절감되기 때문에 '성공만 한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주택을 취득할 수 있다.
지역주택조합의 문제점1 - 업무 대행사의 용역비용
자, 이제 지역주택조합만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원래대로라면 지역주택조합은 지역민들이 조합을 구성해 자금을 모아, 땅을 매수함으로써 시행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시행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기서 업무 대행사라는 곳이 등장한다. 업무 대행사는 말 그대로 셀프 시행사인 조합의 업무를 대신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돈을 버느냐? 처음에 주택조합을 가입할 때, 주택을 분양받을 때 분양비의 약 20%를 분담금으로 내게 되는데, 이 때 10%가 업무 대행사의 업무 용역비 그리고 나머지 10%가 계약금이다. 업무 용역비는 정확히 어떤 용역에 들어가는 비용을 말하는 거냐? 여러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예를 들어, 아파트 설계를 타 업체에게 맡길 때 발생하는 용역일 수도 있고, 아파트 인가 용역 등 그 명목이 너무 다양하다. 명목이 다양한 만큼 투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용역 업체가 조합원장이나 대행 업무사 대표 친구의 업체이거나 동생의 업체일 경우가 다반사다. 이들은 용역비를 부풀려 수익을 추구한다.
지역주택조합의 문제점2 - 토지 확보
토지확보 문제는 재건축•재개발과 비교하면 좋다. 지역주택조합... 재건축•재개발과 비슷한 거 같은데 차이점이 뭐지? 재건축•재개발 같은 경우는 기존에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즉, 기존의 아파트 소유주)이 기존의 땅에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의 차이점을 간략히 알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재건축•재개발>
A: 여러분들 다 모이세요! 우리 지금 우리 땅에 있는 아파트 너무 낡았는데, 다 헐고 멋지게 다시 지어봅시다! 우리 땅이니까!
B, C, D: 오케이! 전 좋습니다. 집에 물 새서 불안했어요... 가즈아~
<지역주택조합>
A: 야, 우리 저기 다 한 번 집 지어볼까?
B: 형, 땅 있어?
A: 땅은 아직 없어. 근데 저기 땅 좋아보이지 않냐? 저 땅 사서 우리 집 지어보자.
B: 근데 형 땅 살 돈 있어? 나는 돈이 별로 없는데..
A: 걱정 마, 인마. 형이 사람들 모집해올게. 우리 집단의 힘을 보여주자.
토지 강제 수용 기준도 재건축•재개발과 지역조합주택은 그 궤를 달리한다. 신도시 같은 경우도 정부는 토지를 팔지 않겠다는 토지 소유주로 하여금 강제로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 강제력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재건축•재개발 같은 경우는 전체 토지의 75%의 소유권만 확보하면 나머지 소유권을 그 소유자로 하여금 강제 수용할 수 있는 법이 있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의 강제로 매도를 청구할 수 있는 기준은 95%이다. 아니 95%라니? 75%만 해도 달성되기 어려운 수치인데, 95%는 신이 도와줘야 한다. 즉, 지역주택조합에게만 강제 매도 청구를 할 수 있는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도 사업이 진행되기 어려운 점 중 하나이다.
이게 재건축•재개발과 지역조합주택과의 차이다. 재건축, 재개발은 땅이 있는 사람(아파트 소유자)만 참여할 수 있지만 지역주택조합은 물론 무주택이거나 기타 가입 조건들이 있기는 하지만, 재건축•재개발보다는 그 가입 조건이 훨씬 덜 까다롭다. 또 하나의 문제가 더 있다. 바로 알박기다. 현재 조합이 땅을 전체 중 94% 확보했다고 해보자. 강제 매도청구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1%만 확보하면 된다. 그 1%의 첫 번째 대상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라면 그 이전 지주들이 계약한 금액으로 협상하겠는가? 그 전 지주들이 땅을 평당 3,000만 원 정도에 거래했다면, 당신 같으면 3,000만 원에 거래하겠는가? 나라면 적어도 두 배 이상은 부르겠다. 당신은 아쉬울 게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알밖기 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간은 흘러가고 비용은 계속 나간다. 물론 이전 지주들과 계약할 때, 계약 금액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계약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누가 돈을 벌면 그 소식은 대체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지역주택조합의 문제점3 - 추가 분담금
사업이 잘 진행된다면 내가 처음 돈을 낸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위에 열거한 이유만으로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은가. 업무 대행사는 땅을 사야하는데 돈이 모자른다는 이유로 당신에게 분명히 추가 분담금을 요구할 것이다. 알박기 때문에 땅 사는 데 돈이 모자른다는 둥, 건설비 자재 값이 올라갔다는 둥 그 이유도 참 다양하다. 용역비로 자기네들이 많이 해먹어서 남은 돈이 없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신은 울며겨자먹기로 돈을 내게 된다. 여기서 망치면 당신이 제일 손해이지 않은가? 지역주택조합은 이 과정의 반복이다. 돈 낸 게 어제 같은데, 대행사는 돈 없다. 돈 달라. 그리고 몇 년 지나면 조합원들은 돈은 냈는데, 대행사는 돈이 없다고 하고 사업은 사실상 좌초된다. 나의 부모님의 경우도 현재 이 상태다.
지역주택조합의 문제점4 - 가입과 탈퇴 그리고 계약의 불공정성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합을 가입할 때 현혹되는 문구가 '땅 90% 확보' 같이 대부분의 땅을 확보했다고 업무 대행사는 광고를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95%가 확보되지 않은 한, 사업은 진행되지 않는다. '90% 토지 확보를 했는데, 나머지 10% 확보 못하겠어?'라며 많이들 여기에 속는다. 더군다나 확보율이 올라갈수록 알박기가 나올 확률도 올라간다.
조합을 가입하고 몇 년 정도 흘러 지칠대로 지친 조합원들 중에 지금까지 들어간 돈은 안 받을 테니 탈퇴하고 싶은 조합원도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탈퇴하기도 쉽지 않다. '나 탈퇴할래요! 그동안 돈 납입한 거 돌려줘요!' 하면 우선 계약서를 내밀면서, '탈퇴하시려면 조합원님 대신 다른 조합원이 가입하셔야 돼요' 라고 대꾸하는 조합도 있다. 그런데, 당신이 탈퇴할 때 즈음이면 이미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터일 텐데, 새로 가입할 조합원이 있겠는가? 돈 못 받는다. 포기하시라.
하지 마라.
이게 지역주택조합의 실상이다. 이것말고도 문제가 너무 많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거 위주로만 끄적여봤다. 우리 부모님 역시 약 3억 가량의 돈을 넣었고 5년이 흐른 지금, 건물은커녕 아직 토지확보도 완료하지 못했다. 5년 간 약 300억 정도의 돈이 모였지만, 지금 통장에 남은 잔액은 3억 3천 정도이다.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업무 대행사와 조합 임원들의 투명하지 않은 회계 탓에 현재 조합에 남은 건 불신과 오해밖에 없다. 나의 부모님이 가입된 조합 같은 경우는 토지 이자 낼 돈도 남아있지 않아서 사실상 디폴트 상태다. 근데 그 디폴트 조합조차도 더 빼먹을 게 없나, 슬금슬금 다가오는 하이에나는 계속 있기 마련이다. 지역주택조합으로 내 집 장만하고 싶으신가? 하지 마라. 싼 거는 싼 이유가 있다. 지역주택조합 같은 경우는 만에 하나 잘 돼서 내 집을 장만한다고 해도 따지고 보면 꼭 싼 거 같지도 않다. 당신의 스트레스도 비용이다.
'LifeLog >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은 이기적인데, 왜 사회는 발전할까(발전해 왔을까)? (0) | 2023.03.29 |
---|---|
왜 사는가, 왜 공부해야 하는가 : 목표 부재의 시대, 집단 무기력의 시대, 공허의 시대, 어정쩡과 겉핥기의 시대 (공허에서 충만으로) (0) | 2023.03.29 |
귀찮고 신경쓰이는 일에 낭비되는 자원들 (0) | 2023.03.27 |
신용, 너 참 어렵다? (0) | 2023.03.26 |
MegaThreats 필사한 거 (0) | 2023.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