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누나는 외국에서 생활 중이고, 곧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부탁을 하나 받았다. 안과 예약 시간을 알아내는 거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정보를 알려줬다. 오늘 여러모로 바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기억에 혼동이 왔기 때문이다. 맞다. 사실 핑계다. 결과적으로 나의 누나는 안과 진료 때문에 다른 일정을 바꾸었는데, 내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는 바람에 그녀 역시 일정이 꼬여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미용실 예약을 바꾸면 안 되냐고 했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사실 상대방이 나의 누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당연히 나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 가능한 시간을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게 일차적인 나의 잘못이다. 나는 왜 그리 행동하지 못했을까? 스스로의 감정을 돌아보건대 나는 그녀의 반응이 기분이 나빴음이 틀림없다. 내 실수를 듣는 순간, 그녀가 지었던 한숨, 그리고 한 마디. "너 회사에게 이렇게 일하면 안 돼. 에휴" 그래. 난 이 반응이 굉장히 불쾌했던 것이다. 왜일까? 회사에서 이렇게 일하면 안 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백수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자격지심인 걸까? 누나에게 열등감이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겠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잘못과 상태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모른다'라는 종결어미를 씀으로써 인정을 회피하고 있다) 그래. 나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 싫었던 것이다. 특히 나의 누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그녀와 잘 맞지 않았으니까. 누나 특유의 날 무시하는 말투. 누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나의 누나가 나를 무시하고 깔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자격지심이 생긴 것이다. 이럴 때마다 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너보다 잘 돼서, 너를 짓밟을 거라고' (과격한 표현이지만 이렇게 생각한 적은 종종 있다) 생각해 보면 참 비극이다. 십 년 이상 같이 살아왔는데, 그 결과가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이라니. 안타깝다. 너만 잘하면 된다고? 그래, 잘못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는 걸'지도'. 지금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걸'지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상태를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위해서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누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의 잘못이라는 양, 아무리 상대방이 실수를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관계가 지속가능하겠다고 말하는 것인 양, 스로의 행동에 대해 자위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가올 미래에도 오늘 행동에 대해서 사과 따위는 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녀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솔직해지는 건 어렵다. 특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일수록 더더욱 더. 적개심을 품은 대상에게 머리를 숙이고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굉장한 수치스러움을 동반한다. 특히, 대상이 나의 사과를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대응하면 수치스러움은 두 배가 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나와 누나의 관계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다르겠지만. 나는 참 어리석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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