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2023

어떤 부모의 딸과 아들의 차이

깡칡힌 2023. 5. 4. 16:09

나의 누나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활동적인 사람이다. 그녀는 항상 무언가를 한다. 주변에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나의 누나지만 그 점만큼은 정말 부럽다. 그녀를 보면 사회생활 정말 잘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누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나의 열등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많이 하게 됐다. 그녀는 한 마디로 꽤 도전적인 성격을 타고났다. (후천적인 걸까?) 결단력도 빠르고 도전의 역치도 나보다 낮은 걸로 보인다. 똑같은 부모로부터 이 세계에 던져졌는데 왜 나는 그녀와 같은 도전적 성향이 없는 걸까? 왜 나의 도전에 대한 역치는 그리도 높은가? 부러운 동시에 궁금했다. 인간의 성향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연인가, 아니면 매우 높은 확률로 그렇게 결정되어 있는가. 내 누나는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아마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고민하고 시기하는 건 항상 열등한 위치에 있는 자의 특징이니까. 나는 왜 도전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누나를 부러워하는 걸까? 아마 그런 성향 자체가 현대 세계에서 생존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일 터. 현대 세계에서 도전하는 성향은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좋은 도구이므로 모두들 그런 성향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전에 대한 역치가 높은 나 같은 사람들 중 그 일부는 억지로라도 스스로를 도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던져버린다. (자신을 그런 상황에 던져버리는 이들 역시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매우 용기 있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상황에 나를 던져버려야 할 것 같다. 스스로의 의지로 도전하기에는 무섭다. 아직은 말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 건가. 왜 나는 도전하는 성향을 욕망하는 거지? 왜 도전을 두려워하면 안 되며 도전의 역치가 낮아야 하는가? 더 많은 자원에 접근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왜 더 많은 자원을 가져야 하는데? 자원이 많을수록 행복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는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는 말인가? 아니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는 건 목표가 잘못됐다. 행복은 일시적 상태를 나타내는 감정일 뿐, 목표가 될 수 없다. 아이스크림을 맛볼 때는 매우 달콤하지만 언젠가는 녹는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생물학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행복하면 인생의 모든 것이 긍정하고 종국에는 번식을 함으로써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이 쉽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유전자가 우리에게 준 유인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정말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운반책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유전자는 아니 자연은 왜 내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뇌를 준 것이지? 이 역시 이런 생각을 함으로써 생존 더불어 번식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란 말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답을 죽기 전에 찾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잠정적인 답은, 아주 우연히 태어났는데도 (인간은 실제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게 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누가? 내 유전자가. 유전자에 의지는 없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끔 그렇게 코딩되어 있는 것 같다. 본인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이상 왜 본인이 이 세상에 던져진 의미를 찾는단 말인가. 인생에 대해 궁금해할수록 그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호기심이란 것도 생존이나 범식의 범주에 속해있는 부분집합이 아닐까? 인간의 모든 행동은 생존과 번식으로 설명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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