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각기 저마다의 이유로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무엇 때문에 사냐고 물어보면, 흔히 돌아오는 답변은 몇 개로 한정된다.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이외에도 더 다양한 대답이 있겠지만, 내가 여태컷 들어온 대답은 '돈'과 '행복' 정도였다. 사실 돈을 벌기 위해 산다는 답변 역시 포장지를 한 꺼풀 벗기면 대다수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번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행복을 추구하는가? 행복하게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철학적인 관점에서 행복을 정의하면, 사람마다 그 정의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행복을 생물학적 의미에서 조망한다. 즉, 생물학적 의미에서 행복이란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당신은 언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는가? 월급을 많이 받았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이성과 섹스할 때? 그렇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본 행복은 쾌락 그 자체이다. 쾌락은 우리가 어떤 일을 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구체적인 느낌이다. 이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자니 참 애매한데, 쾌락은 그 자체로 좋은 '느낌'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먹는 식사, 낮잠, 이성과의 하룻밤의 정사. 앞에서 열거한 이 모든 행위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쾌락, 즉 이 행위들을 하면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쾌락은 지속되지 않는 일시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이 행동들은 우리로 하여금 반복된다. 왜? 기분이 좋으니까!
쾌락을 추구하는 게 기분이 좋다는 건 알았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쾌락을 추구하게 하는 걸까? 신? 그럴 수도 있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은 대부분 무신론자인가보다. 그들은 그 범인이 우리의 뇌라고 주장한다. 뇌가 왜 우리에게 쾌락이라는 느낌을 선사하는지 설명하기 전에, 뇌에 대한 오해 하나를 바로잡고자 한다.
혹시 뇌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뇌가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신체 기관인 건 알고 있다. 나도 그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신체 기관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리가 있으니까 걷고, 입이 있으니까 입으로 밥을 먹지,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으랴? 하지만 우리의 이런 신체기관들은 각기 다 쓸모가 있다. 물론 쓸모가 있어서 발전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과거 손과 발 등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기관이 없는 우리의 공통 조상에게서 돌연변이로 인해 이런 기관들이 생겨났고, 이런 기관들이 존재함으로써 그들은 타 종보다 생존하는 데 더 우월한 지위를 가졌다. 그 미래가 바로 현재의 우리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행동을 제어하는 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흔히 생각나는 답변은 '생각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니다(나는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뇌는 우리의 신체 기관을 더 잘 사용하기 위해서, 더 본질적으로는 우리를 생존하게끔 하는 게 제 1의 목표이며, 나머지 역할은 전부 부차적이고 제 1목표의 부분 집합일 뿐이다.
그렇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본, 인간이 행복해야 될 이유는 생존과 번식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가치판단을 하지 말자. 그냥 그렇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모든 행위는 전부 생존과 번식이라는 포장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왜 여성들은 위트있는 남자를 좋아하는가? 유머가 생존과 짝짓기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을까? 위트 자체는 생존 필수품이 아니다. 그러나 위트는 이성으로 하여금 더 높은 매력도를 가지게 한다. 공작새의 꼬리가 공작새의 생존과 직결될까? 오히려 눈에 띄기 때문에 천적에 눈에 띌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꼬리가 그렇게 화려한 이유는 단점을 상쇄할 만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처음부터 하나다(사실 이것말고도 저자가 전달하는 재밌는 메시지가 많다). 우리가 알고 있는 행복의 선후관계는 뒤집혔다. 즉,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은 살아갈 이유를 못 느낄 것이며, 결국은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그런 의미에서 우울증은 정말 위험한 질병이다). 생존, 더 나아가 번식, 한 발 더 나아가 유전자의 복제. 이것이 뇌(유전자) 입장에서 바라본 '행복의 기원'이다.
행복의 기원. 이 책은 다시 읽어도 참 재밌는 책이다. 다음에 행복의 가치에 대해 회의가 들면 다시 한 번 책을 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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