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러하듯 점수에 맞춰서 과를 선택했다. 아빠의 권유도 있었다. 컴퓨터를 잘하면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3수를 했음에도 그냥 시스템에 맞춰서 공부를 한 것이다. 모두들 공부를 하니까. 모두들 대학에 가니까. 나만 안 가면 도태되는 거 같으니까. 사회의 지배적인 시스템에 속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내 시야를 가렸다. 나는 그때까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이 얘기를 왜 하는 거냐고? 개발자가 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기업 자기소개서에 나오는 단골 질문이 있다. "개발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가 그것이다. 이 질문은 나를 매우 곤란하게 한다. 개발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냐고? 소위 말해서 나의 열정을 말해보라는 건데. 흠, 글쎄. 모방한 목표에 열정이 있을 리가. 나는 그냥 남들이 하니까 개발 공부를 한 것뿐이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직업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10년 전만 해도 개발자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못하였다) 그래서 고민이다. 개발자 교육이나 기업 자기소개서에 위 질문에 대해 나는 뭐라고 써야 할까? 적당히 내 과거 이력을 부풀려서 써야 할까? 소위 말하는 '자소설'을 써야 하나? 그런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만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 면접에서 해당 답변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할 거 같다. 아무리 훈련한다고 해도 거짓된 철학과 소신은 언젠가는 까발려진다. 그래서 고민이다. 스스로를 속일 만큼 개발자가 돼야 할까? 배부를 소리 하지 말라고? 먹고사는 데 그런 게 어딨 냐고? 일단은 붙고 봐야 한다고? 그것도 맞는 말이라 반박은 못하겠다만.... 됐다. 나는 아직 배부른 놈이다. 더 굶주려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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