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를 나름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시쳇말로 깨시민이라고 한다지?). 특히 분리수거할 때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데 그 이유는 분리수거를 잘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고, 이물질이 묻어있으면 세척하고, 끝끝내 이물질이 제거되지 않으면 일반 쓰레기로 배출하는 나. 이 정도면 분리수거를 잘하는 모범시민 아닌가? 그렇지 않다. 이 역시 개인적 자위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나 역시 분리수거를 하면서 어디에 배출할지 애매한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레짐작으로 버리곤 한다. 나의 직감을 믿는다. 왜냐고? 나는 분리수거 모범 시민이니까. 이를 테면 옷걸이는 겉은 플라스틱이지만 속은 철제로 되어 있어 버리기 애매하다. 나는 철제로 간주하고 옷걸이를 버렸다. '속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라면서 기분 좋게 옷걸이를 철제 분리함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뿌듯한 기분을 느낀다. 오늘도 공동체의 번영에 기여했구만!
우리는 재활용 분리수거를 할 때 4번 중에 한 번은 잘못 분리해 넣는다고 한다. 이는 꽤 높은 오류율이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실수를 저지르게 할까? 우리 대다수는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 그게 지나친 나머지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것을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집어넣으면서 스스로를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심해라. 그 작은 엔도르핀 작용은 조심하지 않으면 쓰레기를 생산하게 된다. 옷걸이는 재활용이 될까? 아까 안을 까보니까 철로 되어있으니 철로 분리수거하면 될 거라고 했지? 그럼 플라스틱 병뚜껑은? 주스박스는? 크리스마스 전구는? 안타깝게도 이 품목들 전부 일반쓰레기로 배출해야 한다.
분리수거를 잘했다는 자부심은 엄연히 말해서 위선이다. 나는 지적 게으름에 빠졌던 것이다. 어디에 배출할지 몰랐다면 직접 알아봐야 했다. 인터넷 검색, 아니 ChatGPT에게 물어봐도 기가 막히게 알려주는 세상 아닌가. 왜 나는 한 번의 스텝을 밟지 못했던 걸까? 추측건대, 분리수거를 잘함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오로지 나만의 감정 즉 뿌듯함밖에 없어서 아닐까. 분리수거 잘한다고 누가 칭찬을 해주나, 아니면 돈을 주나? 단순히 내가 얻는 이득이라고는 뿌듯함이라는 감정뿐이다. 아니 오히려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보 습득 시간과 제품에 붙은 이물질 제거까지 포함해 나의 시간을 더 투입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다. 사람들이 왜 분리수거를 안 하는지 알겠다! 분리수거를 잘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그리 크지 않다. 아니 오히려 앞서 말한 대로 시간적 손해가 더 크다. 모두가 규칙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나만 규칙을 지키면 호구가 되는 세상이기 때문일까? 분명 모두가 규칙을 지키는 와중에 자신만 지키지 않을 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극대화된다. 그러면 다른 개체도 점점 규칙을 지키지 않게 된다. 공유지의 비극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공유지는 바로 지구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나포함) 분리수거를 잘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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