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업을 기준으로) 세상에는 2가지형 인간이 있다고 한다. 창업형 인간과 직장인형 인간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창업형 인간일까, 아니면 직장인형 인간일까? 아마 직장인형 인간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직장인형 인간인 열등하고 창업형 인간은 우월한 걸까? 사람에 따라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창업에 성공한 어떤 이들은 목에 힘이 들어간 상태로 대중에게 "창업하세요! 저처럼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파하니 말이다. 나는 어떻냐고? 창업형 인간을 열망하는 것은 맞지만, 내 현재 인간상은 직장인형이기 때문에 내가 속할 집단이 열등하다고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상태가 열등하다고 생각하니 더 나아 보이는 인간상을 욕망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직장인형 인간을 열등하다고 취급하다간, 창업형 인간이 세운 회사에는 직원이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자기를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고용주와 함께한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위 이론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교육은 모두 직장인이 되는 걸 전제한다. 동의한다. 살면서 나는 내 업, 내 회사를 스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말이다. 다른 대한민국 청년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렇다. 우리가 배우는 국영수, 대학에서 배우는 전공 교육들은 대부분 왜 배우는 걸까? 학문에 통달하기 위해서라고? 에이, 우리 좀 솔직해지자. 나는 점수에 맞춰서 그리고 컴퓨터공학이라는 전공이 앞으로 유망할 것이라는 얘기에 혹해서 수동적으로 학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개발자가 되는 걸 당연시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개발하는 일이 생각보다 재밌지 않네? 큰일났다. 몇 년 동안 이 길을 내 길이라고 여기고 살아왔는데 사회 진출해야 할 시기에 이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어떡하지? 어떤 사업가가 이런 말을 했다. 전자공학과가 정말로 좋아서 라즈베리파이를 뜯어보고 분해해 보고 스스로 만들어본 이랑, 그냥 수동적으로 전공을 택하고 졸업해서 회사를 들어간 이랑 어떤 이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겠냐고.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움찔했다. 후자의 인물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컴퓨터공학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가? 바로 그렇다고 답변은 못하겠다. 물론 유용한 지식을 많이 배워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나 어떤 사업가가 말한 전자의 인간형처럼 학교 생활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런 사람은 매우 소수라고. 모든 업종에서 사업가가 말한 전자의 호기심과 행동력을 보인 이는 1% 미만이며 나머지 99%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동의한다. 내가 인턴 면접에서 해당 기업의 기술 이사님께 이와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솔직히 나는 코딩을 밥 먹고 이것만 할 만큼 즐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게 너무 즐겁다고 한 이들이 부럽다. 하지만 나는 그들처럼 될 자신은 없다." 그랬더니 이사님 답변은 "나도 그렇다. 그 사람들은 그들로서 상위 5%로 존재하는 거고 우리는 그냥 평범한 대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인상적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소 실망한 건 이사님 역시 이 개발업계에서 20년 이상 발 담가오면서 본인이 답변한 유형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눈에는 그는 개발을 즐기고 재밌어했다. 그때 나에게 해준 얘기는 단순히 나를 위로하기 위한 발언이란 말인가? 절망스러웠다.
얘기가 잠시 샜는데 나는 스스로 업을 규정해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일까? 아니다. 그런 유형의 인간이 내가 욕망하는 인간상이다. 자기 스스로 업을 규정해 먹고산다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나는 아직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증명을 하지 못했다.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와는 관계없다는 양 세상을 조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오늘이라도 사라진다면 오늘이라도 나는 생존투쟁에 들어가야 한다. 만약 그 상황이 닥치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본능이 날 생존투쟁에서 살아남게 해 줄 것인가?
직장인 생활을 본격적으로 해본 적은 없지만 4개월 간 위에서 말한 작은 스타트업에서 인턴 생활을 해보니, 생각 외로 고통스러웠다. 5일 동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출근해야 하고 즐겁지도 않은 일에 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니. 그 시간과 돈을 바꿔서 먹고살아야 한다니. 그리고 더 절망적인 건 그 프로세스를 적어도 몇 년 반복해야 하는 삶은 상상만으로 내게는 너무 고통이었다. 사람들 다 그렇게 먹고사는 거라고? 내가 배부른 소리하는 거라면? 어제 엄마한테도 정확하게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배부른 소리라고. 자기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거라고. 어쩌면 나는 미디어에서 미화한 표본에 세뇌당한 걸지도 모르겠다. 원래 돈 벌어먹고 사는 건 대부분 고통스러운데 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기가 행복한 일을 하는 매우 소수가 표본을 과다대표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표본을 호도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리숙하고 아직 사회 때가 안 껴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글로서 적는 건 의미가 있다. 훗날 내가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을 때, 밥벌이를 하고 있을 때 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아이 부끄러워라. 그런 감정이 든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성장했으리. 나는 창업형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쪽으로 건너가기에는 너무 두려운데 어떡하지? 두드릴 돌다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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