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유럽 여행을 갔다 오고 나서 내 몸무게는 82kg이었다. 내 키가 174(반올림 ㅋㅋ)인 것을 고려하면 비만이 틀림없다. 나는 체중 감량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거가 있었냐고? 근자감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체중이 이렇게 불어나는 게 두려웠던 나는 체중 감량을 하기로 결심했다. 근자감은 취소하겠다. 사실 살을 뺄 수 있다는 근거가 미약하지만 하나 있었다. 예전에 중학생 때 며칠 굶었더니 체중 감량에 성공했던 게 그 이유다. (사실 더 먹었어야 했는데, 진화압이 작용했다) 그 나이 때는 기초대사량이 성인보다 뛰어날뿐더러 활동량도 많기 때문에 빠르게 살이 빠질 수밖에 없다. 나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랑 같다고 착각한 것이다. 지금은 세포도 노화되고, 활동량도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예전의 방식이 통하지 않을 터, 왜 사람들이 살 빼는 게 힘들다는지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살 빼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 이제는 나도 공감한다. 단순히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만, 이제는 생각이 많이 교정되었다. 샐러드만 먹는 건 솔직히 말해 불가능하다. 우리는 음식 선택이 개인에 의식적 선택에 의해 이뤄지며, 무엇을 먹을지에 관해 '좋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비만인 사람을 향한 태도도 점점 비판적으로 바뀌고 있다. "아니, 의지력이 그렇게 약한가? 한심하긴"라고 잘난 체를 하면서 말이다. (엄마 미안해) 살이 찐 사람은 게으르고, 탐욕스럽고, 의지력이 약한 사람으로 비친다. 그리고 단순한 산수의 문제로 치부한다. 그저 음식은 덜 먹고, 몸은 더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비만의 원인을 개인에서 찾는 건 그만두고 생물학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듯하다. (막연히 운동하면 빠지겠지라면서 걷기만 하는 건 제발 그만두자)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해보자. 왜 우리는 똑같은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데 어떤 이는 뚱뚱(?)하고 어떤 이는 날씬한 걸까? 왜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비만이라는 현대의 질병에 걸리는 걸까? 일부 사람들은 비만, 즉 과식에 더 취약한 걸까? 유감스럽게도 생물학은 그렇다고 말한다. 본질적으로 하나의 종이라는 수준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같은 배(똥배 혹은 식스팩)를 갖고 있지만, 개인의 수준으로 내려가 보면 수많은 유전자 변이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체중과 체형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150개가량 된다. 그중에는 얼마나 배고픔을 느낄지 지시하는 유전자, 쾌락회로에 관여하는 유전자, 뇌가 몸속의 필수 영양분 수준을 감지하여 영양분이 너무 부족하면 더 먹으라는 지시를 내리는 것과 관련된 유전자 등이 있다.
이제 개인들은 지어진 비만의 책임을 내려놓아야 할 듯하다.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먹는 이유, 밤에 침대가 아니라 냉장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이유, 남들과 똑같이 먹는데 당신만 더 살이 찌는 이유가 전부 다라고 하지는 않겠다만 상당 부분 당신이 가진 유전자 변이와 당신 뇌의 배선과 관련돼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자, 그래 유전자 변이가 나의 비만도에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치는 건 알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첫 번째로 유전자 조작을 하면 된다. 하지만 성인들은 이미 그게 불가능할뿐더러 배아 수준의 유전자 조작 역시 윤리적 문제로 인해 금지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전자 조작은 엄마 배 속에서부터 시작한다. 연구에 따르면 체중에 있어서는 70퍼센트가 물려받은 유전자에 직접적으로 결정되고, 나머지 30 퍼센트는 환경적 요인에 달려있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임신 중이거나 모유를 수유하는 엄마가 건강에 좋은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 거기에 노출된 아기도 나중에 몸에 좋은 다양한 음식을 선호하게 되고, 이런 습관이 성인까지 이어질 수 있다. 즉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는 엄마가 먹은 음식이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상에 나왔을 때 태아는 그전에 엄마가 먹은 음식에 더 친숙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엄마의 음식 습관 노출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 노출된다는 건 많이 경험한다는 의미이고 많이 경험한다는 건 그에 따라 뇌의 배선이 바뀐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는 세계의 모든 언어를 익힐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한국어밖에 못하는 걸까? 간단하다. 한국어에 많이 노출됐기 때문에 나의 뇌가 한국어 이외의 다른 음소들은 필요 없는 정보라고 인식하고 뇌 배선의 가지치기가 발생한 것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주의할 점은 이런 기회는 엄마 배속에서 시작해서 19세 정도까지라는 것이다. 그 시간대를 놓친다면 그리고 만약 비만이 쉬운 유전자를 타고나고 비만을 유발하는 환경에 둘러싸여 부모로부터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지속적으로 제공받는다면 이 아이는 반드시 비만으로 살아간다. 잊지 마라. 반드시다. 비만은 질병이다. 그리고 고치기가 생각보다 힘들다. 그렇다고 이런 사실을 본인이 뚱뚱한 이유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지 말자. 사실을 알고 현상을 파악하면 개선할 수 있다.
음식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것도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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