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는 요소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한테 무언가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사람이 함부로 말을 옮기지 않을 거라는 안심이 있어야만 신뢰할 수 있죠. 그런데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서로의 이야기를 지켜주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부로 옮기면 안 되지요. 사람들은 보통 이걸 쉽게 간과하거든요. 만일 어떤 친구가 나한테 와서 “얘, 세상에 캐롤라인 이야기 들었어? 걔네 지금 이혼하려나 봐. 남편이 바람을 폈대.”라고 한다면, 그 친구는 자신이 말할 자격이 없는 이야기를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거죠. 그러면 그 친구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는 겁니다. 나에 대한 이야기도 남들한테 그렇게 가십거리처럼 하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될 테니까요. 그래서 신뢰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려면 모든 일에 대해 일관적으로 입이 무거워야 해요. 보통 누군가를 같이 험담하면서 친해지는 경우가 있는데요. 싫어하는 사람이 같다면,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실컷 주고받고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하면서 빠르게 가까워지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이건 진짜 친분이 아니에요. 그저 누군가에 대한 증오로 잠시 엮인 것뿐이지, 진정한 유대감이 쌓인 관계는 아닌 거죠. 그래서 진정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남에 대한 험담은 애초에 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어떻게 신뢰를 쌓을까?>라는 주제로 쓰인 글을 읽다가 위 문단에서 생각해볼 거리가 있어서 글을 적는다. 글쓴이는 신뢰를 쌓으려면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진정한 관계를 위해서는 남에 대한 험담을 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위 주장은 타당하다. 반박할 여지가 없어보인다. 그런데 예전에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이와 배치되는 이론이 있어 소개한다. 이른바 '뒷담화 이론'이다.
두 번째 이론 또한 우리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세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수단으로서였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전달할 가장 중요한 정보가 사자나 들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개별 남성이나 여성이 사자와 들소의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보다는 무리 내의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40~50명 정도의 사람들 사이에서 수시로 변해가는 관계를 저장하고 추적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하다(50명으로 구성된 무리에는 1,225개의 일대일 관계가 있으며 이보다 복잡한 사회적 조합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모든 유인원은 이런 사회적 정보에 예리한 관심을 나타내지만, 이들에게는 효율적으로 소문을 공유할 수단이 부족하다. 네안데르탈인과 원시 호모 사피엔스 역시 소문을 공유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 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 뒷담화이론은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무수히 많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의사소통의 대다수가 남얘기다. 이메일이든 전화든 신문 칼럼이든 마찬가지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우리의 언어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역사학 교수들이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대해 대화할 것 같은가? 핵물리학자들이 휴식시간에 쿼크에 대한 과학적 대화를 나눌 것 같은가? 물론 그럴 때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기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적발한 교수, 학과장과 학장 사이의 불화, 동료 중 하나가 연구기금으로 렉서스 자동차를 샀다는 루머 등을 소재로 한 뒷담화를 떠든다. 소문은 주로 나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언론인은 원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었고, 언론인들은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무임승차자인지를 사회에 알려서 사회를 이들로부터 보호한다.
신뢰를 쌓으려면 뒷담화 따위는 저 멀리 배척하라고 주장한 글쓴이와는 다르게 유발 하라리는 뒷담화가 악의적인 능력임은 틀림없지만 많은 개체 수가 모여 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즉,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사람들과 만나면 하는 얘기가 주로 타인에 대한 얘기다. 그중에는 뒷담화에 대한 것도 물론 있다. 신뢰를 위해 타인에 대한 뒷담화를 지양하라는 건 물론 타당하지만 하라리가 제시한 이론처럼 뒷담화를 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나는 좀 회의적이다.
위 글쓴이는 특정인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상호간에 주고 받고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하며 서로 빠르게 친밀해지는 관계는 진정한 의미의 친분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 나와 얘기하는 상대방이 다루는 뒷담화 대상이 다른 장소에서는 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뒷담화를 함으로써 서로 친밀해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친밀해지면 그들은 협력하는 데 더 용이할 것이다. 즉, 뒷담화는 나쁘지만 그 자체로서 효용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글쓴이 A보다 하라리의 주장에 더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저자의 마땅히 그러야 한다는 당위 섞인 주장이지만 우리 인류는 많은 곳에서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을 그렇지 않게 행동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판단 역시 내 개인적 경험에 따른 편향된 시각임은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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