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2022

아이의 상처

깡칡힌 2022. 12. 16. 20:00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고 있던 중, 한 중학생이 버스에 올랐다. 그 학생은 버스 기사에게 목례를 한 뒤, 요즘 치고는 어울리지 않게 카드가 아닌 현금을 내고 좌석으로 향했다. 한 가지 내 주의를 끈 것은 지나치게 동전을 요금함에 빨리 투입하는 것이었다. 저 움직임이 나에게는 꽤나 익숙했다. 나 역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을 빨리 넘어가고 싶다는 것은 그 순간이 자신으로 하여금 그리 유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학생도 그랬을 것이다. 뭔가 찔리는 게 있는 거다. 학생은 그 버스를 타기 위해서 1100원 가량을 넣어야 했지만, 100원 동전 한 개만으로는 버스 기사를 속이기에는 부족했다.

 

그 당시 학생이 100원 짜리 동전 하나만 지불했다는 사실을 확인을 한 버스의 표정은 꽤나 불쾌해보였다. 타인이 자신을 속이려 했다는 데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 버스 기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은 버스를 출발시켰다. 약 10분 정도 지났을까. 버스가 신호 대기하던 중, 버스 기사는 운전석에서 일어나, 모두에게 들릴 만한 소리로 그 학생에게 말했다. "대학생이야? 초등학생? 중학생? 다음부터는 버스비 없으면 말해. 그냥 태워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100원만 내는 건 아닌 거 같아." 이 버스 기사의 말에는 틀린 게 없다. 미성숙한 아이의 부정을 바로잡는다는 명분도 있다. 하지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이 상황에서 내가 버스 기사라면 나는 어떻게 대응하는 게 옳은 걸까. 아이를 당장 불러서 단단히 혼을 내야 할까? 그렇다면 속았다는 나의(버스기사) 불쾌함은 해소됐을 것이다. 청소년의 부정을 바로 잡았다는 명분도 있다. 그렇게 나는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 학생은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라지만, 다수의 군중 앞에서 망신을 당해야 한다. 그 상처의 크기는 알 수 없다. 추후에 그 학생의 인생에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척하자니 다음에 이런 일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다. 버스를 운행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승객들 몰래 가서 조용히 말하는 것도 제한된다. 

 

이 버스기사의 대응은 현 상황에서 가장 메뉴얼대로 행동한 것처럼 보인다. 다른 승객들 몰래 말하지는 못했지만, 재발 확률을 낮추고 인정을 보였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어른이라는 인식이 아이에게 심겼을 수도 있다. 다만, 더 좋은 대응은 없었는지 고민하게 된다. 아마 내가 그 상황의 버스 기사였다면 나는 더 감정적으로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부정을 모두 앞에서 밝힌 뒤, 그냥 내리라고 했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결말은, 나의 불쾌한 기분도 해소하면서 학생의 재발방지도 막으면서 나아가 학생이 상처도 받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결말이 가능할까. 나는 도덕적인 척하면서 그 누구보다 위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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