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저자의 전작 '세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를 읽었다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한 경험이 있다. 이 책은 어렵다.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어렵고 문장의 호흡도 길고, 문장마다 담겨있는 정보가 방대해서 배경지식이 많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내가 그랬다. 한 번만 읽고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제목이 매우 도발적이다. 붕괴하는 세계라니.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바를 고려하면 '붕괴'라는 표현도 많이 완곡하게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헬조선, N포 세대, 모두가 가난해진다] 등 요즘 삶을 표현하는 자조섞인 표현을 미디어나 주변인들의 입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맞다. 요즘 삶은 참 어렵다. 나도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사회의 거친 바람이 무서워서 방구석에 앉아 책을 읽는 게 맞는 건지 만날 스스로에게 물어보고는 한다. 고통스럽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번영의 시기였던 걸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인류 역사상 전쟁의 비용이 평화의 비용보다 컸던 적이 있었던가? 사고나 폭력으로 죽은 이보다 비만으로 죽는 이가 많은 시기가 있었던가? 비단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지금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번영의 시기였던 걸 증명하는 사례는 주변에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이제 그 시가가 끝났으며, 우리는 이 시기를 다시는 안 올 번영의 시기로 기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이런 황금이 시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미국 주도의 세계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세계화란 정확히 무엇인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다양한 의미를 설명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운송이다.
운송에 대해서 한 번 얘기하기 전에 전에 지리적 위치에 대한 이점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을 비록한 서방 세계가 (현재까지) 역사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다른 대륙의 사람들보다 더 우월하고 똑똑해서? 아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바로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온대 기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식량을 재배하기도 다른 대륙에 비해 쉬었다. 더 많은 식량을 재배할 수 있다는 의미는 더 많은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더 많은 개체군은 더 많은 노동력, 더 많은 지혜 등 그 이점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즉 충분한 식량 확보는 고밀도의 인구집단을 형성하고, 인구 밀집은 계층화를 야기하여 문명의 체제를 잡는 기틀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정학과 운송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매우 관계가 있다. 운송은 이런 지정학적 이점을 (완전한 상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운송이 불가한 세계였다면 나는 자동차를 탈 수도 없었을 것이며(자동차 자체가 없다), 오늘 아침 양치질을 하는 데 사용했던 치약도 없었을 것이며,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우리는 교역을 통해서 석유를 수입하고, 구리나 철강을 수입해서 가공해서 다시 수출하는 등, 우리에게 없는 원자재를 수입해서 사용하거나 혹은 원자재를 부가가치를 붙인 제품으로 가공해서 다시 수출할 수도 있다. 즉,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의 핵심은 교역, 그 교역을 가능하게 한 것이 운송이다. '조선시대에서 다른 나라하고 교역은 했잖아? 왜 호들갑이냐?'라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안보가 보장되지 않은 교역은 매우 큰 리스크를 동반해야 했다. 우리가 생산한 갤럭시S 휴대폰을 (원래는 비행기로 운송할 테지만, 상상력을 발휘해서) 배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운송한다고 가정해보자. 주변에 해적을 만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운송 중에 우리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가 운송 중인 배에 어떠한 타격도 가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즉, 문제는 안보다. 세계화 이전의 교역에서는 안보가 보장되지 않았다. 미국은 스스로가 리더가 돼서 안보 보장을 통해 다른 나라 교역선이 운송하는 중 만날 수 있는 리스크를 대폭 줄여줬다. 혹여나 운송 중에 다른 나라의 개입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난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자신들이 가진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보복을 하거나, 그 나라를 세계화의 흐름에서 퇴출시켜 버렸다. 운송, 이것이 지정학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나라들이 그 불이익을 상쇄할 만한 효과를 가져왔다(한국은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곳 중 하나에 속한다 ).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 주도의 세계화의 흐름이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 노릇에 지쳤다. 이제 그들은 이제 현직에서 물러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잘하고 있었는데 왜? 그 이유는 책을 한 번 더 읽고 끄적여보겠다 ㅋㅋ
## 느낌
책 중간 중간에 섬뜩한 내용이 많아서 흥미롭기도 했지만 무서운 감정도 많이 일었다. 저자가 전망하는 앞으로의 세계의 모습이 각자도생의 세계이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현실화된 세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그가 단순히 음모론을 팔며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매우 안타깝게도 한국은 탈세계화된 세계에서 지금의 지위를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는 세계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미국으로 이민을 가야하나? 아니면 이런 섬뜩한 느낌을 가끔씩 느끼면서 자연히 도태돼야 하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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