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알고리즘 문제가 너무 안 풀려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공허했다. 공허감이 내 몸을 지배했다. 스카이까지는 아니지만 학창 시절 늦은 나이에 다수의 파도에 휩쓸려 입시에 뛰어들어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으나, 실패했고 좌절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내 수준에 맞는 대학에 왔으나, 역시 나는 입시 때와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게 없었고 나만의 소신도 주관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다수가 가는 그리고 유망하다고 하는 전공을 택했고 어떤 흥미 없이 대학 생활을 했고 이제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사회 진출이 무서워 책을 읽는다는, 더 준비를 한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찾고 싶다는 알량한 핑계를 내세워 사회 진출 시기를 미루고 있다. 나는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쳇바퀴 같은, 자극이 크지 않은 일상을 보내오다가 공허함이 찾아왔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공허했다. 몰입하지 않았고, 내 오감이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를 나의 두뇌에 저장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들었다. 공허한 게 왜 문제냐고? 당장에는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이 공허함은 곧 포장지를 뜯고 후회와 미련으로 둔갑한다. 그 때부터가 정말 불행의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한한 시간을 머물다 떠나가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인류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짧은 삶을 살다 간다. 우리의 시간은 환불이 되지 않는다. 구입한 순간부터는 낙장 불입이다. 후회는 그래서 무서운 감정이다. 비가역적, 즉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불행감은 이 후회와 미련에서부터 기인한다. 그 때 해볼 걸, 시도할 걸, 도전할 걸. 이런 일련의 껄무새들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내가 느낀 그 공허함이 바로 비극의 초입이다. 나는 종교도 믿지 않고, 결혼할 수 있을지, 즉 내 이름이나, 신념 혹은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후회라는 감정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충만함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충만함은 어떻게 오는가. 바로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살 때뿐이다. 부자가 되고 싶지만, 싶지 않음을 안다. 그 구멍이 예전에 비해 현저히 좁아졌기 때문이다. 부자가 될 수 없더라도, 공허함을 없애고 하루 하루 충만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본질에 대해 치열하게 느끼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오늘 날의 삶의 자세 아닐까.
목표가 사라진 시대, 어정쩡의 시대, 집단 공허함에 빠진 시대. 이 시대의 제목을 짓는다면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시대 이념에 순응하지 말고 반대로 살아가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게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이다.
'LifeLog >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의 꿈 (0) | 2023.03.31 |
---|---|
1등의 함정 (0) | 2023.03.30 |
인간은 이기적인데, 왜 사회는 발전할까(발전해 왔을까)? (0) | 2023.03.29 |
왜 사는가, 왜 공부해야 하는가 : 목표 부재의 시대, 집단 무기력의 시대, 공허의 시대, 어정쩡과 겉핥기의 시대 (공허에서 충만으로) (0) | 2023.03.29 |
귀찮고 신경쓰이는 일에 낭비되는 자원들 (0) | 2023.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