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2023

방황

깡칡힌 2023. 4. 5. 11:51

내가 하는 방황은 생산적인 방황일까, 아니면 단순히 소모적인 방황에 불과한 걸까. 결과는 이 방황이 끝난 후에 내가 뭘 하는지에 달린 거 같다. 하지만 현재까지 내 느낌으로는 소모적인 방황 같다. 뭔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크게 들고 있지 않아서일까. 여하튼 도전이 없는 무료한 삶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렇게 내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는 게 맞는 건가?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늦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을 대학생 때 했으면 좋았을 것을. 고독한 사람이 되어서야, 완전한 혼자가 되어서야 이런 고민에 빠졌다. 나의 하루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나의 삶은 항상 휩쓸려 다니는 삶이었다.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한 경험이 손에 꼽는다. 학창 시절, 친구라는 무리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무리에 속해야만 나의 학교 생활이 원활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학교의 헤게모니를 쥔 것은 선생님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아이도 아닌,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의 행동을 모방했고 그 아이를 욕망했다. 

 

학창 시절 나의 최상위 가치는 친구였다. 친구와 잘 어울리는 게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나는 왜 멋있게 보이고 싶었을까? 누구에게? 아마 그 대상은 이성이 아니었을까? 학창 시절의 남학생들의 욕망하는 여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아니다. 오로지 외모가 그 절대 기준이다. 소위 외모가 뛰어난 여학생들이 친해지는 남학생은 인기가 많은 남학생이다. 그래서 나는 인기 많은 남자아이를 욕망했을까? 여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왜 여성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까? 왜 그들과 친해지고 싶었을까? 번식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까? 그 나이 때도 번식 욕구가 있었을까? 음,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성과 친해지고 싶다는 그 욕망 근저에는 번식욕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얘기가 잠시 샜는데, 고3이 되어서도 나는 휩쓸려 다녔다. 나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못했다는 건 조금 이상하다. 왜냐하면 그전까지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이걸 알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순히 공부를 안 하면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라는 게 이유라면 이유다. 살면서 why, 즉 '왜?'라고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이 일을 왜 하는가? 우리 행동의 근원적 동기는 모두 '왜'에서 출발한다. 그런 면에서 고3 당시, 나의 공부의 시작은 '왜'가 아니었다. 단순히 주변 친구들이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휩쓸려' 나 역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친구라는 무리에 속할 수 없을 거 같았기에 나도 공부를 시작했다. 왜 하는지는 몰랐지만 다 하니까, 안 하면 나만 이상하니까. 그냥 했다. 재미는 없었지만 그들과 함께 했기에 적어도 외롭지는 않았다.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하는 능력이 그 당시의 나에게는 없었다. 

 

자,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방황하고 있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 개발자 공부를 간간히(?) 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직업을 얻는다면 개발자가 가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공도 컴퓨터공학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 이 역시 나의 그간의 삶의 궤적과 궤를 같이 한다. 답이 예상되는가? 그렇다. 그 당시 유망하다고 하니까. 취업이 잘 된다고 하니까. 난 또 남들에게 휩쓸려 이 전공을 택한 것이다. 휩쓸려 한 선택이 내게 만족을 준 적은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개발하는 걸 즐기는 거 같지는 않다. 이 역시 외롭기 때문일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직까지는 삶의 쾌를 느낄 만큼의 즐거움과 행복함을 이 일로 하여금 느껴보지는 못했다. 아이고, 큰일 났다.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음과 같은 상황이 지금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대로 어정쩡하게 시간만 보내며, 절박함과 다급함, 남들에게 뒤처지는 두려움 때문에 직업을 구하지는 않을까? 왜 하는지도 모른 채,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주말만 기다리는 노동자가 되는 건 아닐까? (노동자를 비하하는 게 아님을 알아 달라. 나 역시 노동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뿐) 이런 비판이 들린다.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 몇이나 되냐? 그냥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 맞다. 나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단순히 나의 이 상황을 합리화하려고, 자위하려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떠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러웠다. 이 일이 너무 행복하다고, 자기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그들은 항상 열정 가득했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 역시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나는 또 속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