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허전하고 뒤숭숭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구미로 1일 간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안산이지만 워낙 어릴 때라 안산에서의 기억은 그리 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사실상 구미가 고향이다. 동물의 귀소 본능 때문일까? 한 번은 구미에 가고 싶었다. 내가 살았고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막상 가려고 하니, 머뭇거려졌다. 변화를 회피하는 이 망할 놈의 두려움 때문이라고나 할까. (이런 결정을 하는데도 한참을 머뭇거리다니,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금오산,, 내가 살았던 집,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내가 자주 갔던 거리, 그리고 식당.... 가보고 싶은 곳이 참 많았다. 노스탤지어를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현재를 위로하고자 과거의 즐거웠던 경험을 회상하기 위해서 아마 나는 구미에 가고 싶었던 거리라. 실제로 가보고 싶은 장소를 대부분 갔다. 하지만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실망도 적잖게 했다. 내가 구미에 살았던 시기는 약 20년 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이란 시간이 흐르니 모든 게 변해있었다. 내가 과거를 추억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장소는 별로 없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공간 역시 세월의 변화 앞에서는 그 침식을 막을 수 없는 걸 깨닫지 못했던 걸까.
내가 나의 누나에게 예전에 구미를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왜 과거를 추억하냐고 그녀가 말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맞는 말이다. 과거를 추억한다는 건 현재 혹은 미래의 삶이 변변치 못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내 현재 삶은 변변치 않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나의 현재를 위로받기 위해 나는 구미를 갔다. 적잖게 실망도 했지만 그런 와중에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감정도 느꼈다. 자유다. 구미를 향해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이 시간에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니 이것이 자유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자유란 가치가 이리도 소중했단 말인가. 지금까지의 내 삶은 자유롭지 않았다. 그리고 한 동안 그려나갈 내 삶 역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 밑에서 비교적 풍요롭게 자랐으니, 나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부모님 영향 하에서 부분적으로만 허용되었고, 앞으로는 생계유지를 해야 하는 탓에 내 자유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속박될 것이다. 이제 당분간 구미를 갈 일은 없을 듯하다. 과거는 과거로만 그리고 나의 기억 속에서만 추억하고,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테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과거의 향수를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설레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되면 좋겠다.
(이번 글은 상당히 오글거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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