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스터디 카페에는 우산이 많다. 사람이 많든 적든 늘 일정한 수량의 우산이 있는 걸 보아, 아마 주인이 없는 우산일 것이다. 그래서 고백하건대, 한 두 개 정도는 내가 쓰고 온 적이 있다. 비가 세차게 오는 날이었다. 그냥 맨몸으로 집으로 돌진하기에는 빗줄기가 너무 사나워서 주인 없는 우산을 썼다. 맞다. 난 암묵적 절도를 한 것이다. 물론 주인 없는 우산인 걸 경험적으로 기억하고 있었으나, 혹시 아는가, 내가 쓰고 간 이후에 진짜 주인이 올지. (윤리적 잣대 따위는 내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합리화할 수 있는 나는 위선자다) 사실 이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언젠가 스터디 카페에서 내건 안내문을 본 기억이 있다. 해당 안내문의 내용은 주인 없는 우산이 너무 오랜 기간 방치됐다는 이유로 특정 기한 내 가져가지 않을 시 모두 폐기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했다. '내가 쓸 우산으로 집에 몇 개 가지고 가면 안 되나?' 스터디 카페 측에 문의하려고 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창피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물음도 들었다. '폐기 처분인 재화를 타인에게 양도해도 되는 걸까?' 폐기 처분한다고 해서 소유권이 폐기 처분을 수행하는 주체에게 양도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나는 처음에는 어차피 버릴 거 뭔 상관인가라는 생각을 하였으나,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어떨 것인가? 폐기 처분인 우산을 내가 받았는데, 이후에 진짜 우산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전 주인은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나는 제삼자에게 받은 타인의 재산을 나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애매하다. 스터디 카페 측은 분명히 공지했고 당신이 찾아가지 않았으니, 문제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원래 주인 측 입장에서는 당신이 뭐라고 나의 소유물의 이전의 결정하냐고 주장할 수 있을 거 같다. 마찬가지로 단지 내 주인을 찾을 수 없는 자전거 역시 아파트 관리 측이 타인에게 양도해도 될까? 그냥 일상생활 중에 든 고민을 적어봤다. 어떻게 해야 될까? 위와 같은 애매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냥 전부 폐기 처리 하는 게 좋을까? 하지만, 해당 자원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타인이 있지 않을까?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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