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2023

예외는 어디까지 적용이 가능한가

깡칡힌 2023. 4. 13. 00:31

스터디 카페에는 노트북 허용 좌석이 따로 있다. 아무래도 키보드나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가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특정 구역만 노트북을 사용하도록 구역을 나눴으리라 생각된다. 합당한 조치이고 내가 사업자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터디 카페를 몇 달간 다니면서 노트북 허용 좌석에 주로 앉았다. (노트북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하지만 특정 자리에만 앉다 보니 외롭기도 하고 자극도 덜 되어서 노트북이 허용되지 않은 자리에 요 근래 앉기 시작했다. 자리를 옮기니 생각보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앉은자리 주변에는 사람이 별로 앉지 않아서 조금 외로운 느낌을 받았는데 요즘 앉는 자리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앉기 때문에 함께 공부한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어 집중이 잘 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스타벅스를 찾는 사람들이 오로지 커피만 마시러 가는 건 아닐 것이다. 스타벅스라는 공간감과 주변 사람들이 주는 분위기를 즐기러 가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내가 이번에 옮긴 자리는 그러했다(약간 오버하면 말이다). 그래서 한 동안 그 자리에 앉았는데, 카페 관리하는 직원이 노트북 자리가 아니라고 지적을 한다. 지적을 받은 순간 클루지가 발동하다. '이 정도 갖고 뭘. 소리도 별로 안 나고, 방음 패드도 샀는데!' 합리화가 진행됐다. 실제로 내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소리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나 이외에도 노트북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거슬린다는 느낌을 받은 기억도 별로 없다. 그래서 이 정도면 융통성을 발휘해도 되지 않나라고 생각이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나의 노트북 타자 소리가 시끄러운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시끄럽고 거슬리지만, 싫은 소리를 하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그냥 본인이 참는 사람도 있지 않았겠는가. 만약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소음까지 용인해야 할까? 그 기준은 데시벨로 해야 하나? 측정은 가능한가? 그렇다. 예외를 적용하다 보면 순간의 얼굴 붉히는 과정은 모면할지라도 공동체 전체로 볼 때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크다. 나는 내 개인의 이익, 나의 외로움을 달래고 조금 더 자극적인 경험을 위해 타인의 경험과 감정을 희생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합리화를 무의식적으로 하며, 타인의 손해에 대해서는 매우 둔감하다. 나처럼 말이다. 반성한다. 내일부터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