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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세습에 열중하는가 (유재용)

깡칡힌 2023. 4. 15. 18:56

우리는 왜 세습에 열중하는가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체제 하에서 살고 있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공동체가 살아가는 방식에는 수많은 체제가 있었음에도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 자본주의가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 녀석은 아주 간사해서, 자기가 불리해지면 이리저리 형태를 바꿔가면서 우리에게 매력 발산을 해댄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미 답을 말했다. 그것은 적응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적응해 왔다. 시스템 주제에 유기체처럼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했다.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닌,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진화론의 주장을 자본주의 체제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즉 인간의 생존 방식과 가장 유사한 제도라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적어도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가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딱 하나다. "세습하지 말자. 그리고 핏줄 말고 능력 좋은 이에게 리더의 역할을 맡기자." 세습이란 무엇인가? 아니 그전에 상속과 세습에 대해 구분부터 하자. 우리는 평소에 이 두 개의 개념을 혼동해서 사용한다. 상속은 자기의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의 것이란 대부분 실체가 있는 재산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세습은 공적인 성격을 띠는 지위를 편법적으로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대기업 오너가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상속일까, 세습일까. 회사, 그중에서도 주식회사로서 상장되어 있는 주식회사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경우에는 세습이다. 그럼 반대로 비상장 회사이고 지분 소유도 100%라고 했을 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상속일까, 세습일까? 판단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회사는 지분이 아무리 개인의 소유라고 하더라도 공적인 성격을 일부 띠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이 있다면 회사의 경영진도 어느 정도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래서 회사의 경영권은 세습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아니, 내가 내 새끼 잘 살게 해 주려고 회사도 만들고 돈도 버는 거지. 그것도 못하게 하면 내가 왜 열심히 일해야 하나?" 오해하지 말자. 당신이 말하는 것은 '상속'이고 저자가 말하고픈 바는 '세습'이다. 상속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가 이렇게 돈도 벌고, 더 열심히 살고자 하는 근본적 동기는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기심 속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녕도 포함되어 있다. 상속이 부의 양극화를 가속화시킨다는 점에서 비판이 있기는 하나, 상속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습은 다르다. 세습은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이다. 리더라는 공적 성격을 띠는 지위를 물려주는 것은, 그 조직의 속한 수많은 개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즉, 능력을 검증받지 않고, 창업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지위를 세습한다는 것은 공동체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 전체적으로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당장 우리의 재벌 형태를 보자. 재벌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독특한 경영 형태이다. 영어 단어로도 고유어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 대기업이 생산하는 부는 전체 부의 절반이 약간 넘는다고 한다. (책에 비율이 나오는데 까먹었다. 2017년 통계 기준으로 절반이 약간 넘는 걸로 기억한다) 즉,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부의 절반이 수 천 개의 기업 중 20개 안팎에서 생산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조직의 선장을 창업자 가문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뽑는 게 저자는 못마땅하다. 아니, 못마땅한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비유를 하자면 올림픽 선수 대표를 선발하는 데, 부모가 올림픽 선수였던 사람 중에서 뽑는 것과 유사하다. 스포츠는 그 특성상 유전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서 후손도 좋은 선수일 가능성이 크기라도 하다. 하지만 경영적 자질은 유전이 잘 되지 않는 듯하다. 정주영 씨와 이병철 씨는 진정한 의미에서 기업가였지만, 지금 그 후손들이 그들의 자질을 물려받았냐고 묻는다면 물음표가 붙는 게 현실이다. 

 

축구 대표팀이나 야구 대표팀 국가 대표를 실력이 아닌 다른 기준(나이, 서열, 친분, 학연 등)으로 뽑는다면 우리는 분노한다. 특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우리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의 경영권 세습에 대해서 우리는 왜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는가? 어쩌면 우리는 둔감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의 10에 9은 재벌 2세가 등장한다. 그리고 평범한 소시민과 재벌 2세의 순수한 사랑의 스토리가 Ctrl C + V 한 것처럼 왜 이리 똑같은 건지? 여기서 재벌 2세는 대부분 가업을 승계하고 그 과정에서 악당을 만나면 그들을 처치(?)함으로써 정당한 세습을 쟁취(?)해낸다. 그리고 이 과정이 드라마 서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는 아무도 여기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오버하지 말라고?  타당한 비판이다. 하지만 대중 미디어는 시민들의 세계관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비록 유희를 위해 보는 드라마라도 이런 비판적인 시각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세습이 당연스러운 사회, 아니 당연스럽지는 않더라도 '그게 뭐 대수야? 원래 그런 거 아니였어?' 와 같은 둔감한 반응이 자연스러운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사회 전체의 부, 그리고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는 시각이 강하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너무 유교적인 색채를 띠는 주장이 군데군데 있어서 불편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유교, 특히 공자를 싫어하게 됐다) 또한, 너무 경제적인 번영과 발전을 강조한다. 그래서 결과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도덕적 낙후도 용인될 수 있다는 투로 읽히는 부분도 다소 있지만 내가 그의 뜻을 오도했을 수도 있으니,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읽을 때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겠다.

 

저자는 기자다. 그리고 기자로서 갖는 그의 비판적 시각에 대체로 동의하고 배울 수 있는 바도 많다고 생각한다. 저자 같은 기자만 있다면 언론 개혁이니 뭐니 이런 선정적인 구호가 선동용으로 팔리지 않을 텐데.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