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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과학 (The Science of Fate, Hannah Critchlow)

깡칡힌 2023. 4. 27. 22:22

The Science of Fate

이 책은 솔직히 어렵다(내게는). 300페이지 정도밖에 안 돼서 하루 만에 뚝딱! 읽어보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안 읽혀 이틀 좀 더 걸린 거 같다. 더군다나 책을 읽었으면 우선 완독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후반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텍스트만 읽어 내린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이 책은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야 할 듯하다. 

 

이 책은 책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좋은 질문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던지는 가장 큰 줄기의 질문은 다음과 책 제목에 제시되어 있다. 운명의 과학. 즉, 우리의 운명은 생물학적으로 이미 결정돼 있는 걸까, 아니면 노력이나 기타 여건에 의해서 바뀔 수 있는 걸까? 나는 예전부터 "야! 너도 노력하면 할 수 있어"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이 말의 의도는 자기가 노력해서 성공했으니(여기서 성공의 의미는 대부분 돈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노래도 <촛불하나>라는 곡이다. 가사가 "너도 할 수 있어!"로 범벅돼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유의 주장이 자신의 우월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너무 비뚤어진 걸까? 즉 겉으로는 타인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근저에는 자신이 노력했고 성공했다는 그러니까 인정해 달라는 아우성처럼 들린다. 너무 꼬인 거 아니냐고? 인정. 

 

개인의 상황을 근거로 타인에게 적용하고 조언하는 건 이제 폭력이다. 우리에게 노출되는 건 단지 표면적 진실뿐이다. 즉, 어떤 사람이 성공했다고 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배경 때문인지, 끈기 있게 매달리는 유전자 때문이지 주변 사람들 때문이지 등 너무 많은 변수가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생 경험을 타인에게 적용하는 짓(?)은 이제 그만두자. 폭력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우리의 운명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돼 있는 걸까? 아니면 알 수 없는 걸까? 저자는 마지막에 우리가 뇌에 알고 있는 건 아직 극히 일부이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너무 많다며 말꼬리를 흐리고 있지만, 내가 감히 추측건대 저자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간 중간에 그런 여지를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많이 남겼다) 사실 책의 핵심 아이디어를 요약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제대로 못 읽은 부분이 많은 거 같아 내 개인적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의 아빠와 그의 딸은 모험심과 그리고 일반인 수준에서 보면 꽤 도전적인 성향을 타고난 거 같다. 그에 비해 나와 엄마는 겁쟁이형이다. 즉, 도전에 대한 역치가 아빠와 아빠의 딸에 비하면 꽤 높다. 도전하는 사람, 시도하는 사람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좋은 자원을 차지한다고 하지 않나? 나의 성향은 이 세계에서 좋은 지위나 자원을 차지하기에는 장애물이 많았다. (실제로 차지한 자원[그게 유형이든 무형이든)이 별로 없기도 하고)

 

호모 사피엔스의 성향이 살아남는 데 유리한지 아닌지는 그 시대 환경이 정한다. 예컨대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의 아빠와 누나의 성향은 살아남는 데 그리 유리하지 못했으리라. 수렵채집인들은 말 그대로 수렵 채집을 했다. 내가 집어든 예쁜 버섯이 만일 독버섯이라면? 아침에 잡은 물고기가 너무 귀엽다! 맛도 좋을 거 같다! 아이고, 알고 보니 복어였네? 도전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독버섯이나 복어같이 본 적 없는 음식을 먹었을 확률이 높다. 그들은 도전적이니 말이다. 반대로 나의 엄마나 나 같은 성향을 가진 수렵채집인은 확률적으로 그런 유의 음식은 집어 들지 않는다.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시를 먹을 것으로 한정했지만 정보가 많이 없었던 수렵채집인들에게 잠재적 위험은 너무나 많았다. 그들이 항상 조심해야 했다.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시계를 돌려서, 현대로 돌아오자. 오늘 날은 인공물의 시대다. 독버섯이나 복어 때문에 죽을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정보가 넘쳐난다. 이런 시대에서 살아남기 좋은 성향은 도전하는 성향이다. 세상은 효율적으로 바뀌었다.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 무슨 말이냐고? 메가스터디를 창업한 손주은 씨는 소위 1타 강사의 강의를 오프라인에 참석한 소수의 학생들만 듣는 게 너무나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대한민국 전역에 있는 학생들이 날씨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1타 강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 줬다. 즉, 교육 시장의 비효율을 해소하고 이 시대의 자원인 돈을 벌었다. 그는 도전했다. 독버섯이나 복어 때문에 죽을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려워해야 할 건 독버섯이나 복어가 아닌 도전하지 않고 컴포트 존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만 보내는 것이다. 굳이 손주은 씨처럼 거창한 예가 아니더라도 도전해야 자원을 차지할 기회라도 잡을 수 있다는 걸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지금 시대의 주인은 도전적 성향을 갖고 있는 모험가들이다. 

 

자, 이제 내 고민으로 다시 돌아오자. 나는 고민했다. 나는 왜 도전하지 않지? 그리고 아빠의 딸은 왜 도전적이지? 똑같은 호모 사피엔스 종이고 똑같이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데 왜 이리 다른 걸까? 나는 유전자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회피하기 위함도 아니요, 나의 현 상태를 긍정할 수 있는 핑계 거리를 찾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현 상태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알아야 변화할 수 있으니까. 현재까지 내가 뇌과학 책 고작 몇 권 읽고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 결론은 계속 수정될 것이다. 공부할 것이기에.

 

  • 한 사람의 성향은 생각보다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생각보다 말이다. 60% 이상이다. 
  • 우리의 운명은 어쩌면 생물학적으로 결정돼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반박이 많다. 하지만 이 반박 역시 우리가 우리의 뇌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면 깨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우리가 뇌에 대해 알고 있는 바는 비율로 따지면 10% 정도밖에 안 된다.

 

나는 내 현 상태를 긍정하기 위한 핑계를 찾기 위한 용도로 뇌과학을 공부하는 게 아니다. 바꾸고 싶어서다. 내 성향을. "그냥 하면 되지! 그게 그렇게 어렵냐!"라고 말하는 건 내가 매우 폭력적으로 들린다. 그래서 바래본다. 훗날 기술이 발달되면 내 성향을 편집할 수 있지 않을까? 겁쟁이에서 모험심 강한 모험가로 말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조차도 유전자 혹은 뇌의 배선 편집 기술로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세계가 위험천만하고 매우 불경스러울 수는 있지만 내가 죽기 전에 한 번은 보고 싶다. 나는 알고 싶다. 뇌에 대해서. 한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