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러닝을 시작하면서 발목 통증이 간헐적으로 찾아왔다. 꽤나 신경이 쓰여 접질리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오른쪽 발목을 심하게 접질린 적이 있어, 발목 상태가 좋지 못하다. 왜 접질린 곳만 또 접질린다고 하지 않나. 내가 바로 그런 경우다. 운동을 하거나 발을 잘못 디디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오른쪽 발목을 자주 삐었다. 그래서 평소에 조심해서 걷고 뛰려고 하는데 통증이 빈도가 증가하는 거 같아,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아니 병원이 뭐 이리도 많담?
내가 다니고 있는 스터디카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병원에 찾아갔는데, 병원을 갈 때 꽤나 놀랐다. 아니, 주변에 무슨 의원급 병원이 이리도 많나? 물론 위치가 아주대 삼거리라서 나름 번화한 곳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이 너무 많다. 동서남북에 있는 건물에 병원이 없는 건물을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길 건너편도 마찬가지였다. 병원 많으면 좋은 거 아니야? 많아도 불만인데라고 할 수 있겠으나, 병원의 접근성이 좋다는 건 그만큼 없는 의료 수요까지 창출될 가능성이 많다. 무슨 말이냐 감기 환자 같은 경우에는 일주일 내지는 2주일만 있으면 자연스레 완화되는데, 동네에 의원급 병원이 이리도 많다면 나 같아도 병원을 방문할 것 같다. 병원비도 매우 싸니 안 가면 뭔가 손해 같다. 사실 요즘 건보재정에 관해 관심이 많아서 주변에 있는 수많은 의료기관을 보고 자연스레 생각이 그리로 확장되었다. 이 글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만 여하튼 주변에 병원이 너무 많다. 너가 젊어서 병원 갈 일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그 말도 맞다. 나는 역지사지를 잘 못하는 인간이니까.
병원 환자는 만만찮게 많다. 기다림... 이것이 뉴노멀(New Normal)인가?
병원에 드러섰을 때 오늘이 목요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다. (보통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 않나? 아니라고? 그렇다면 죄송...) 앞서 주변에 수많은 의료급 병원의 수에 혀를 내두른 나였지만 병원 환자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진료를 받기까지 50분 걸렸다. 내가 그동안 너무 편한 의료에 길들여져 있던 걸까? 주변에 병원이 이리도 많은데 사람들은 이 병원밖에 안 오는 건가?
대한민국 의료.... 지속가능한 건가...?
우리는 이전까지 편한 의료에 길들여진 듯하다. 굉장히 외딴곳에서 사는 게 아닌 이상, 동네의 15분 내지 20분 거리에 의원급 병원이 하나쯤은 있지 않던가? (대형병원도 접근성 측면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접근성 덕분에 우리의 진료권은 보장됐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느 국가보다 더 말이다. 아마 대학병원의 페이닥터보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차리는 게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겠다는 의사들의 욕망도 한몫했겠지만 그런 욕망을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의료접근성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매우 좋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게 지속될 수 있을까? 병원 내에서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50분 기다렸다고 짜증 냈지만 앞으로는 50분 기다리면 그날 로또 사야 할 만큼 운이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의사 공급에 비해 수요는 많고 노령 인구 증가로 인해 그 수요층의 증가 속도는 더 가파를 테니 말이다. 사실 기다리는 거라면 불만은 다소 있다만 그래 기다릴 수 있다. 근데 만약 내가 오늘 진료받는 과목이 정형외과가 아니라 흉부외과라면 나는 치료받을 수 있을까?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접근성을 자부하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의료접근성 때문에 우리의 그 좋디 좋은 의료권은 조만간 뺏기거나 제한될 처지에 놓여있다. 부분적으로 말이다. 왜냐고?
얼마 전 가천대병원에서 소아과 입원치료를 중단한단다. 이유인즉슨 의사가 없단다. 또한, 얼마 전에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병원에 의사가 없어 주변 병원 5곳을 전전하다가 결국 치료를 못 받아 사망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니, 주변에 의사 되고 싶은 사람은 이리도 많은데 왜 의사가 없다는 거야? 의사. 모든 이들이라고 하기는 그렇겠으나 의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높은 사회적 지위는 물론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고액 연봉자이기 때문이다. 아마 의사가 된 사람들도 의사가 된 이유의 근원에 높은 연봉도 있었을 것이다. 돈 많이 벌 수 있다는데도 의사가 없단다. 왜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사가 없는 게 아니라, 특정과목 의사가 없는 것이다. 내가 간 정형외과나 평소에 사람들이 많이 가는 내과, 이비인후과, 통증의학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 대중적 수요가 있는 관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들 관들은 수요가 끊길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대우가 좋지 못한 과, 수요가 없는 과 이를테면 소아과, 흉부외과 등이 있다. 소아과는 수요가 없는 게 아닌, 수요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기피과가 됐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저출생 때문인 건 말 안 해도 알겠지?) 문제는 이들 진료과목들이 없어져서는 안 될 필수 진료과목이라는 데 있다. 수요는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돈 안 되는 과 어떤 병원장과 경영진이 좋아하리?
우리 까놓고 말해보자. 솔직히 의사 되는 이유가 뭐냐? 돈 많이 벌기 위해서 아니냐? 물론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돈 역시 결정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의사로 돈을 많이 벌려면 나가서 개업을 해야 한다. 개업해서 나 같은 환자들을 박리다매로 빠르고 그리고 많이 치료해야 그들이 돈을 벌 수 있다. 근데 소아과? 아동인구가 줄어드는데? 뭐 흉부외과? 심장을 다루는데 의원급 의료기관 누가 가겠나? 즉, 의료 현장 역시 대부분 자본의 논리로 작용한다. 대중적 수요가 많은 정형외과, 내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은 없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생길지도 모르겠다. 결국에는 돈이다. 흉부외과 의사, 소아과 같은 기피과목의 대우를 여타 다른 과목들보다 낫게 해 주면 관련 과를 택하는 전공의들이 늘지 않을까? 그 대우를 좋게 하는 게 어려워서 지금 이 사달이 난 거겠지만 뭐, 이렇게 가다간 의사가 없어 진료를 못 받는 당사자가 나거나 내 주변인일 수 있다. 아니 거의 확정이다. 그러니 당신은 아프면 안 된다. 절대로 말이다. 만약 운이 안 좋아서 뇌출혈이 생겼다? 소생확률이 얼마나 될지.
병원의 디지털화
의식의 흐름으로 쓰다 보니 다소 쓸데없는 얘기를 했는데, 병원에 가서 신기했던 점은 바로 키오스크다. 병원에 키오스크가 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들어온 지 2년이나 됐다고 한다. 사실 해당 키오스크는 예약, 결제, 처방전 출력으로 그 기능의 제한은 크지만 의료기관, 그것도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시작된 거 같아 그 감회가 새로웠다. 앞으로는 병원 가서 접수한 후 기다릴 필요 없이, 모바일로 접수한 후 진료받으면 훨씬 내 시간을 아낄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이런 디지털 리터러시가 약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공장
이건 사실 이 병원뿐 아니라 대부분의 병원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병원을 갔더니 대부분의 병원 관계자들이 공장에서 찍어낸 사람마냥 하나같이 똑같다. 무미건조한 설명부터 시작해서 친절치 못한 대응... 병원 갔더니 기분이 썩 상했다. 아마 중견기업 회장님 정도는 돼야 병원 가서 대접 좀 받을 수 있나 보다. 사실 거창한 대접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궁금한 사항에 대한 답변을 받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싶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의 고충이 얼마나 크면 소비자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는지 궁금했다. 진상 같은 환자가 그리 많은 걸까? 아니면 병원장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걸까? 뭐가 됐든 그들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며 딸일 텐데, 점점 감정 없는 노동자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사회인이 된다는 건 전부 그런 걸까? 나 역시 그런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나의 감정을 죽여야만 하는 걸까?
전문가의 현학 그리고 소프트 스킬
전문가들이 쓰는 표현은 어렵다. 어떨 때 보면 과도하게 현학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오늘 만난 의사도 그랬다. 내가 이해했는지 안 했는지는 관심 없고 과도하게 현학적인 표현만 골라서 쓴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 사람은 자기가 아는 걸 뽐내고 싶은 건가? 나는 여러 가지 궁금한 게 많아서 물어보고 싶었으나, 의사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몸 관리를 그렇게 했냐며 혼나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마 일반인보다 많은 의료지식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람과 소통하는 소프트 스킬이 부족한 거 같았다. 아무리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도 일반인을 설득하지 못하면 돈을 벌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 역시 사람을 대하는 소프트 스킬이 현저하게 부족하니 말이다.
오전 1시간 내외의 낯선 경험이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이었다. 이 경험을 잊고 싶지 않아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서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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