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명품을 사고 SNS에 자기의 모습을 올리는 건가.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SNS를 하는 게 두렵다고 하는 게 적확한 표현이다. 나는 남들처럼 동적인 삶을 사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남들이 관심 가질 만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내 하루는 모니터 앞에 앉아서 텍스트를 보거나 영상을 보는 데 대부분 사용된다. 즉, 대부분 정적인 활동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이 활동 자체가 남들이 관심 가질 만한 콘텐츠가 아니다.
예전부터 SNS에 나만의 게시글을 올리는 게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이 댓글을 안 달아주면 어떡하지?' '좋아요가 하나도 없으면 어떡하지?' '남들이 나를 친구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등등 나의 행동 기준에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포함돼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주관 있는 자아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말 그대로 내가 욕망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비단 자신이 현재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모습을 욕망하거나 모방하려고 하지 않는가. 나 역시 그랬다. 누구보다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주관 없는 내 모습이 아닌, 개인의 주관이 뚜렷하며 스스로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독립적인 개체가 되기를 바랐다. 말 그대로 바랐다.
헛헛하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헛헛한 기분이 자주 드는 사람이 많으리라. 우리는 이 헛헛함을 충만함으로 바꾸기 위해 골프를 치거나, SNS의 자신의 휘황찬란한 삶을 올림으로써 사람들의 부러움을 대가로 받거나, 아니면 명품을 소비한다. 이 명품 역시 말로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면서도 타인이 내 명품을 알아봐 주지 못하면 그거는 그것대로 곤란하다.
우리 삶의 모든 기준은 돈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돈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개인을 타인과 구분해주는 출발점이며 끝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 우리는 어제의 나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기세 좋게 말하지만 실상 중요한 건 내 옆의 남보다 잘하는 게 더 중요하다. 돈은 남보다 많아야 하고, 행복 역시 그 비교 대상은 어제의 내가 아닌 바로 내 옆에 앉은 남이거나 SNS에 팔로잉돼 있는 친구들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게 뭔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왔고 그 해결책 역시 남이 아닌 스스로를 비교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기만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체제 자체가 비교와 경쟁을 통해 성장해 왔는데 갑자기 내 옆의 남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라니. 뭔가 탐탁지 않다. 그렇다면 체제를 전복해야 하나? 아이고야 그렇게 무서운 행동을 감히 내가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의 상상력의 한계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보다 더 좋은 체제가 아직까지 생각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삶은 항상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경쟁하면서도 경쟁이 아닌 협력을 해야 한다.
다시, 질문이다. 헛헛하다. 우리는 소비를 통해 비교대상으로써 타인을 압도하면서 이 헛헛함을 달래왔다. SNS는 이 헛헛함을 달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건드린 최고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 과정이 지속가능한가? 정녕 소비를 통해서만 나의 헛헛함을 달랠 수 있단 말인가? 말하면서도 우리는 이게 정상적인 방법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내 안의 충만감을 채울 방법을 우리는 교육받지 못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소비할 돈이 내게는 없기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책이나 다른 미디어를 통해 흡수하고 내 세계관을 넓히는 것밖에 없다.
'LifeLog >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 위기가 온다고 하는데... (0) | 2023.05.31 |
---|---|
zero-sum과 plus-sum (0) | 2023.05.30 |
공무원 공부의 효용 (0) | 2023.05.26 |
마케팅에 대한 불편한 속내 (0) | 2023.05.25 |
신과 오만 (0) | 2023.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