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2023

가능성의 저주

깡칡힌 2023. 6. 1. 11:32

나는 예전부터 타인으로 하여금 내가 재능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뒤에서는 노력을 하면서 마치 처음 한 일인 듯 행동했다. (혹은 밤에 공부나 연습을 했음에도 안 한 척을 한다거나. 뭐든지 이 척! 척! 척! 이 문제다!) 타인이 나를 소위 재능러(?)처럼 봐주길 바랐던 것이다. 나는 공부를 못했으나 왜 몇몇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함에도 주변 아이들에게 공부를 안 한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감히 추측건대, 그들은 자신의 특별함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 아닐까? 즉, 자신은 공부에 거의 시간을 안 했지만 특출난 가능성이 있는 아이로 보이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던 것 아닐까?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뭐냐고? 바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 지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타인과 나는 별개의 주체로 구분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는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으로 타인에게 인식되고 싶어한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그 특별함의 범주 내에는 재능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그녀)를 욕망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재능, 즉 남과 나를 구분 짓는다는 것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수단(번식의 관점에서)이니 말이다. 우리는 나와 타인을 구분지음으로서 더 많은 자원에 접근할 가능성을 높인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은 돈, 지위, 짝짓기 상대 등 다양하다. 

 

나 역시 특별해지고 싶다는 내 안의 욕망 때문에 뒤에선 노력했음에도 마치 처음해본 일인 듯 행동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있는 상태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마치 복권을 사놓고 발표 당일까지 복권 번호를 확인하지 않는 것과 같다. 확인하는 순간 나의 가능성은 실패가 되기 때문이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는 단지 당첨이 될 수도 있다는 그 상태만을 즐기고 싶었다. 그 가능성이 있다는 상태를 벗어나는 순간 성공과 실패 둘 중 하나를 확인하게 될 테니까. 기본적으로 실패는 기본값(Default)고 성공은 예외적인 경우다. 우리는 대부분 실패한다. 그래서 우리(나)는 가능성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까지 않은 복권처럼 말이다. 가능성이 있다면 적어도 상처받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종국에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만큼 후회로 바뀌는 게 없다. 우리가 후회하는 것은 시도를 해봤다 그 자체가 아니라, 시도하기 마음먹기 전까지 그 시간을 후회하는 것이다. 지금 나 역시 마찬가지다. 백수인 이 시기, 이 시기의 기간만큼 내 후회의 농도도 짙어질 것이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그럼 가능성이 있는 그 상태를 벗어나자. 가능성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니다. 마치 대박 아이디어만 있으면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아이디어는 대부분 아이디어일 뿐이다. 정말로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실행력 아닐까? (사업을 해본 적은 없다. 그냥 그럴 것 같다) 그러니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그 가능성 있는 상태를 벗어나 그냥 지금 하자. 조금이라도 말이다. 당신의 가능성은 몇 년 후에 후회로 바뀔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두렵지만 하자. 

'LifeLog >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  (0) 2023.06.02
저작권의 회색지대  (0) 2023.06.01
경제 위기가 온다고 하는데...  (0) 2023.05.31
zero-sum과 plus-sum  (0) 2023.05.30
헛헛함을 달래는 사람들 그리고 충만함이란  (0) 2023.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