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2023

나이, 비난 그리고 자위

깡칡힌 2023. 6. 6. 17:07

나는 미디어에서 성과를 낸 이들을 볼 때 그들의 나이를 유심히 보곤 한다. 왜 그러는 건지 생각해 본 결과 안도감을 얻기 위함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무슨 말이냐. 멋진 성과를 낸 이들의 나이가 나보다 많으면, '그래, 나보다 더 오래 살았으니까 경험도, 지식도 많을 테니 저런 성과를 내는 게 당연하지'라며 자위를 했다. 즉, 나는 내 현재 상태를 나이가 어리니 괜찮다라며 안도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 보이니 말이다. 반면,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멋진 성과를 낸 이들을 보면, 그때는 내 안의 방어체계가 동작한다. (이 장치의 기능이 아주 훌륭하다! 내가 살아있는 한 고장 걱정은 없다) '운이 좋았겠지'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았겠지' 같이 그들의 성과를 품평하기 시작한다. 이 행동 역시 내 마음속 평안과 안식을 위해서다. 그렇게 비난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내가 초라해지기 때문이다. 즉 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나는 '나이'라는 보조기구를 가져와 그들의 성과를 재단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타인과 비교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비교는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비교를 멈추는 게 쉽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비교와 경쟁을 통해서 발전했는데 비교를 멈추라니! 불가능하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자위를 할까? 그 이유 역시 어렵지 않다. 자위를 하지 않으면 나, 조금 더 정확히는 내 자아가 상처받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뇌로 하여금 상처받은 우리가 취하는 행동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들의 방식을 모방하거나 배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들의 우월함을 인정치 않고 깎아내림으로써 내 상태를 긍정하는 뇌도 있다. 그리고 후자를 택하는 뇌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자는 매우 훌륭한 태도이지만 이는 우리의 본능을 다소 거스르는 행위다. 우리의 행동은 전부 뇌에서 결정한다. 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하기 위해서? 아니다. 뇌의 존재 이유는 우리 몸을 잘 통제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우리를 생존시키기 위함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전자라고 인식해도 좋다. 즉, 뇌는 자아가 상처 입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자신이 최고라고 알고 있었는데,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가 있으면 '나'는 가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가치 없는 존재는 말 그대로 살 가치가 없다. 

 

생존의 관점에서 '자위'는 매우 타당한 선택이다. 나보다 우월한 이를 비난하고 까내리는 것이 나의 생존에 더 유리하다. 자존감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자존감이라는 느낌은 '나'라는 존재를 고양시키고 세상의 모든 것을 긍정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뇌는 우리로 하여금 자존감을 느끼게 해준다. 다음 세대로 뇌를 만들게 한 유전자를 남겨야 하니까 말이다. (자살이라도 한다면 유전자를 후세대로 전달할 수 없다) 즉, 우리 내부에서 자위 시스템이 발동하는 하는 이유는 번식을 위해서다. 당신이 인지하고 있든 아니든 우리는 그렇게 생겨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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