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열두 발자국 (정재승)

깡칡힌 2023. 1. 2. 16:57

열두 발자국

   저자(정재승)는 뇌과학자이다. 간간히 교양 프로나 유튜브 같은 미디어에서 저자를 볼 수 있었는데, 그는 일반인에게 과학 지식을 어렵지 않게 스토리텔링 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또한 과학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도 뛰어나서 평소에 좋아하는 분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나를 더 잘 알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나를 더 잘 알고 싶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를 알기 위해서는 신체 부위 중 어느 곳을 더 알아야 할까?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나는 뇌라고 생각했다.

 

   ['나는 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기보다는 컴포트 존(Comport Zone)으로 후퇴할까.', '왜 무언가 했다는 기분이 들면 그 일을 마무리 하지 않고 다른 자극을 향해 떠날까?',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리드하면 주변으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얻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할까.'] 이런 의문들이 평소에 내가 해결하고픈 의문이었다. 이런 의문들을 뇌에 대해 공부하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중 깨달은 일부를 소개한다.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지금 현재가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된 현재일 것이다. 그에 따라 우리 주변 사물이나 삶의 환경은 수렵채집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는 수렵채집인의 신체와 다르지 않다. 즉, 우리의 뇌는 수렵채집인들의 뇌와 다르지 않다는 소리이다. '사람들을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한다' 이 명제로 예를 들어보자. 사실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잘 하지 못한다. 잘 하지 못한다는 표현보다는 '두려워한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거나 사람들을 리드하는 게 두렵다. 왜냐하면 잘 하지 못하면 그야 말로 '개쪽'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성공한다면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와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존경과 인정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뇌는 나로 하여금 사람들을 앞에 서는 걸 거부한다.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과 관련이 있다. 우리 뇌는 본질적으로 리더보다는 '타고난 추종자(natural follower)'이다. 즉 내가 무언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보다 남이 개척해놓은 길을 빨리 쫓아가는 게 성공 확률이 더 높다. 야생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실패는 리스크가 크다. 실패는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펭귄을 예로 들어보자.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 후보들은 혹독한 겨울을 남극 빙하의 한 가운데서 보내고, 봄이 되자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빙하의 끝으로 온 펭귄들은 바닷속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바닷속에는 귀여운 펭귄들을 기다리는 물개가 있으니 말이다. 만약 특정 펭귄이 물개가 없는 곳을 찾아 제일 먼저 바닷속으로 뛰어든다면 그 펭귄은 무리 중에 가장 많은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퍼스트 펭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제일 빠르다는 건 양날의 검이다. 가장 많은 자원을 차지할 수도 있지만 제일 먼저 물개의 식사가 될 수 있다. 이런 본능이 우리의 뇌에도 새겨져 있다. 우리는 퍼스트 펭귄이 되는 걸 거부한다. 퍼스트 펭귄이 된다해도 생물학적으로 죽는 환경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죽지는 않겠지만, 퍼스트 펭귄이 되려다 실패하면 사회적인 평판이 깎여서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그 말도 옳다. 하지만 야생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인공의 세계에서의 상황은 분명히 다르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위의 스토리는 이 책의 메시지 중 일부이지만 내게는 울림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추종자의 삶을 살았다. 퍼스트 펭귄이 되는 건 두려우니까 말이다. 입시 공부도 남들이 하니까 했고, 개발자 역시 남들이 하니까 시작했다. 사실 요즘 세상에서 어떤 삶이 더 맞는지 모르겠다. 퍼스트 펭귄이 되면 가장 달콤한 과실을 얻을 수도 있지만 실패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퍼스트 팔로워만 되도 어느 정도 사는 게 보장되지 않을까. 그래서 가장 확률 높은 선택지를 사람들은 택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니 말이다. 나는 팔로워지만, 이 세상에 던져진 이상 조금씩이라도 퍼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펭귄의 삶을 살아보고 싶기는 하다. 그 길이 인간으로서 이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