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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김경일)

깡칡힌 2023. 3. 18. 16:16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 책은 세이노의 가르침이란 책에서 저자의 추천 도서 중 '필독' 이라고 코멘트를 달았기에 안 읽으면 큰일날 거 같아 읽게 된 책이다. 2001년에 출판된 책이기에 이미 절판돼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었다. 공자를 죽여야 한다니. 제목이 참 자극적이고 도발적이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공자 혹은 논어에서 주창하는 이론에 대한 지루한 비판일 줄 알았는데 조금은 그 궤가 다르다. 저자가 공자를 비롯한 유교 사상을 비판하는 건 맞다. 하지만 유교 사상에 대한 비판은 결과가 아닌 원인이다. 즉, 저자는 한국 그리고 한국인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해진 데 대한 원인으로 공자가 제시한 유교사상을 지목한다. 이 책이 20년도 더 전에 쓰인 책임을 고려하면 그 당시에는 꽤 논란이 되었던 듯하다. 그도 그럴 게, 이 책이 출판된 이후 이 책을 비판하는 책으로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나온 걸 봤을 때, 꽤 많은 비판을 받았으리라. 나는 요즘 들어 과거에 쓰인 책을 읽는 재미가 들렸는데, 그 이유는 과거에 쓰인 책의 저자들이 주장한 바, 그리고 예측한 바를 현재 시점에서 판단했을 때, 어느정도 실현됐는지 퍼즐 조각마냥 맞추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책에 번지르르한 주장을 했지만 현재 시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맞춘 게 없는 저자가 대부분인 걸 보면, 내 주변에서 그리고 미디어에서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 역시 미래 특정 시점에서 조망해보면 대부분 틀리거나 그 용도가 폐기될 것임이 분명하다. 즉, 주위에서 제공하는 주장과 예측 대부분은 개인에게 소음일 뿐이다. 살면서 이 사실을 깨닫는 게 참 중요하건만, 나는 가스라이팅을 잘 당하는 성격이라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래걸렸고, 지금도 그런 혜안을 완벽히 갖추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조금씩 나만의 판단 기준을 늘려갈 뿐이지).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한 바는 현재 시점에서 봐도 상당 부분 동의가 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제시하는 미래상, 그리고 한국인들의 문제점, 세계를 보는 시야 등 오늘의 기준에서 봤을 때 틀린 게 거의 없어서 솔직히 놀랐다. 한 인간이 20년 후의 미래와 그 미래를 지배하게 될 핵심 가치를 이렇게 디테일하게 예측할 수 있다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 그것도 엄청.

현재 내가 살고 있는 2023년도의 대한민국은 그 색체가 전보다 옅어지기는 했지만 아직 유교사상의 뿌리가 남아있다. 유교사상에서 그 가치를 내재화한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많이 생존하기 때문이다(즉, 개체수가 더 많다). 나도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없어 확신할 수 없으나, 내 가치관의 상당 부분 역시 유교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바로 그 빌어먹을(?) 유교사상이 대한민국을 망쳤고 대한민국인들, 더 나아가 우리의 과거를 망쳤다고 주장한다. 알고 있듯, 유교 사상은 그 뿌리가 공자가 살았던 시대인 춘추 시대였으며(역사적 기원이 책에 나오기는 하는데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사상을 수입해서 우리 문화권에 이식했다. 저자가 유교사상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법치가 되지 않는다.
  2. 늘 과거에 묻혀 산다
  3. 주검을 숭배한다.

 

20년 전에 주장함에도 나는 위 주장들을 보고 손뼉을 쳤다(사실 손뼉을 치지는 않았다. 공감이 많이 될 뿐). 첫 번째 법치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법이 있다. 어느 나라나 법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위대한 법전 경국대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법은 엿이었다. 늘이면 늘어났고 자르면 잘렸다. 엿장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법은 있었지만 'rule'은 없었다. 어느 누구도 법을 똑같이 적용받는 규칙, 그 규칙이 조선에는 없었고 한국사회에도 없다.

상당히 공감되는 내용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한국사회의 법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 예들은 너무 많아서 나열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ㄱㅅㄷ 50억??). 유교 사상이 깊게 뿌리밖힌 나라일수록 좋은 게 좋은 문화, 의리 이런 게 강조되다보니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안 그런가? 지금의 사회에서는 20년 전에 비해 그 농도가 조금 옅어졌다고는 하나 일반인들이 체감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두 번째 늘 과거에 묻혀 산다. 우리는 주변 어른들에게 이런 소리를 많이 듣는다.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나 때는 말이야" 등 이런 사람들은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의 공통점은 현재는 그 지위나 하는 일에 있어서 별볼일 없다라는 것이다. 나만해도 과거의 즐거웠던 유년기나 청소년기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가끔씩 있다. 현재 삶이 내게 큰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의 즐거웠던 때로 회귀하고픈 욕망이 있는 것이다. 한 세 달 전에 지금의 국민의 힘 당대표가 된 김기현 씨가 주최한 강연 비슷한 행사를 갔었는데, 참석자들 99%는 60, 70대 중장년층이었다. 20대는 나말고 한 명도 보지 못했다(행사 도우미들 빼고). 주제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 뭐 이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서 그 사람이 한 얘기는 참 가관이었다. "여러분, 우리 위대한 대한민국, 왜 이렇게 됐습니까?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이 구국한 대한민국이지 않습니까? 조금 더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우리의 대한민국 가장 못살던 빈민국에서 세계 10위 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 미래를 얘기한다고 해서 호기심에 들어왔더니 이런 얘기나 하고 자빠졌다. 그는 분명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 그래서 아는 것이다. 이게 먹혀왔고 앞으로도 먹힐 것라는 걸. 한 15분 째 앵무새마냥 똑같은 얘기하길래 바로 나와버렸다. 거기 있는 중장년층은 이런 얘기하면 참 좋은가보다. 박수 갈채가 계속해서 나온 걸 보면 말이다. 아직 윗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내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이해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주검을 숭배한다. 이 역시 두 번째 주장과 비슷하다. 우리는 주검 즉, 시체를 숭배한다. 조상을 숭배하고 전대 왕과 전대 회장님을 숭배한다. 이 주장이 나온 배경은 옛날 중국에서는 샤머니즘 숭배시기다. 샤머니즘은 바위, 물, 정령 등 초자연적인 존재를 숭배하는 신앙 체계를 말하는데, 이 숭배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 즉 윗세대 우리 조상으로 이식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효 문화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없는 존재에게 절을 하고, 그들에게 음식을 바치고, 현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들에게 기도한다. 그들이 존재하기는 할까 싶지만, 아직까지 우리 주변에는 샤머니즘적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올해도 머지 않아 나는 조상님에게 절을 하러 산소에 갈 것이다. 그들이 내 소망을 이뤄줄 수 있을까? 그랬다면 내 인생은 왜 이리 외로운 것이더냐?

 

이 밖에도 저자가 한국사회에 잔존한 유교 문화를 까내리는 것 엄청나게 많지만 내가 글에 담아내기에는 아직 이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한 번 써보겠다. 우리는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아니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싫어하거나 불안하게 느끼면 우리는 도피해버린다. 그리고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핑계를 만들기 바쁘다. 나 역시 그렇다. 타인과의 비교, 허례허식, 예 이런 자질구레한 거 때문에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지금까지의 실수, 그리고 그간의 사고방식을 해체하고 내 안의 공자를 말살하자. 그는 한국사회 최대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