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를 위해 버거킹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가는 길에 스터디 카페에서 오래 봐온 여자 2명을 마주쳤다. 그들도 나의 얼굴을 알고 있을 터이고, 나 역시 그들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오랜 기간 꾸준히 스터디 카페에 출근(?)을 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과 나는 서로 안면식이 있지만 인사는 하지 않는 사이다. 내가 숫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얼굴을 알아도 인사하는 경우가 많이 없는 거 같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상황만 봐도 요즘 세테를 알 수 있다.
여튼 그들과 마주친 위치가 나의 클루지를 깨웠다. 마주친 위치에서 나는 바로 좌회전을 해서 버거킹으로 향하면 됐었고 그들은 그냥 지나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버거킹으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직진했다. 왜 그랬을까? 체면 때문이다. '버거킹을 혼자 가는 게 그들 눈에 내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비치지 않을까? 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 때문이다. 그 둘은 같이 맛있는 식사를 했을 거 같은데 나만 이렇게 패스트푸드 먹는 게 내 딴에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나보다. 정작 그들은 관심조차 없을 텐데 말이다. 즉, 전형적으로 나 혼자 오해하고 나 혼자 행동을 한 상황이다. (참 바보같지 않은가? ㅋㅋ)
이런 모습을 보면 나는 아직 내 행동, 그리고 내 삶에 당당하지 못한 거 같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 몰입의 강도가 높은 이들은 자신이 몰두하는 분야 외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 삶의 모습은 그런 유의 삶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타인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쓰고, 사회가 중요시하고 우월시하는 가치나 재화 따위를 내 삶의 우선 순위에 배치시켜 놓고 살아가고 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는 사회의 주류가 가져야 하는 생각, 즉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해' '학생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 따위의 생각을 내가 강요하든가 말든가 크게 상관없었다. 사회가 나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하기를 바라든, 나는 누구의 생각에도 영향 받지 않은 독립적 개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북한 주민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효율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공산주의와 독재 체제에 왜 옹호하고 순응하지?' 같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도 나의 사고 방식이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즉, 내가 어릴 때 품었던 생각은 사회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랬던 바로 그 생각이다.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나의 사고의 틀은 이 대한민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내가 오늘 했던 행동의 기반이 되는 생각이 어디서 파생됐는지 추적하고 있다. 나는 왜 남의 눈치,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필요 이상으로 신경쓰게 됐을까?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나에게 그렇게 사고하도록 작은 아이디어를 내게 심어준 거 아닐까? 너무 심한 비약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단순히 나의 소심함의 원인을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찾고 있는 것뿐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이 유독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건 사실처럼 보인다. 그게 좋아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질문하지 않고 집단에서 목소리 내는 걸 두려워한다. 나도 두렵다. 하지만 생산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자신 안에 기생하고 있는 이 유교사상, 즉 공자를 죽일 필요가 있다. 공자를 죽이자. 그는 대한민국 사회 최대의 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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