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더러운(?) 주제가 될 수도 있다. 몇 달 전부터 화장실 변기가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유튜브도 보고 구글링도 해보면서 변기를 뚫기 위한 온갖 뻘짓(?)을 다해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변기 구조까지 공부했는데 젠장!!) 그렇게 하루 이틀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변기 기사님을 불렀다. 업체 선정도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더라. 내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구글링이 거의 유일한데, 구글에는 몇 개의 업체의 광고로 도배되어 있으니 그 업체 중에서 한 곳에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가 합리적 소비를 하기 위한 정보 비대칭성이 변기 A/S 필드는 꽤 심한 거 같다. (사실 조금만 시간을 들여서 알아보면 더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하는 서비스 업체를 알 수 있었을 텐데, 나의 귀찮음도 한 몫했다)
기본 서비스비용은 5~7만 원 정도다. 그 정도면 지불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기본 서비스로 변기가 안 뚫릴 경우 발생한다. 내시경으로 변기 막힘의 원인이 특정이 안 될 시, 변기를 탈거하거나 청소기로 변기 내부를 청소하면 비용이 그만큼 청구된다. 또는 고압 세척도 있는데 그 역시 비용이 추가로 청구된다. 우선 기본 서비스비용은 말 그대로 기본 청구 비용이며 석션 작업은 10~15만 원 정도까지 비용이 늘어난다. 우리 집 변기 같은 경우에는 내시경 카메라로 들여다봐도 문제 특정이 안 돼서, 변기를 탈거하고 오수관 청소까지 할 뻔했다. 오수관 청소의 경우 비용이 60만 원까지 청구가 된다고 한다. 아이고야, 변기 한 번 막혀서 재수 없으면 직장인 한 달 생활비 거덜 나게 생겼다. 오수관 청소까지 안 가기를 바라면서 우선 석션 작업만 했다. 그리고 매우 다행히도 청소기로 변기 내부를 한 번 청소하니 변기가 다시 뚫렸다. 5% 정도 시원찮기는 하나 그래도 예전만큼의 시원한 물 내림이 가능해졌다. 석션 작업을 했으므로 비용은 15만 원이 들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변기가 뚫리니 기분도 좋았고 변기 기사님도 젠틀한 분이 오셔서 작업해 주니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엄마, 아빠는 이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 듯하다. (아니 변기 뚫는데 15만 원씩이나 준다고?) 그들의 한숨과 목소리 그리고 말투는 나를 향한 실망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았다. 왜 조금 더 야무지게 일 처리를 하지 못하냐고 말이다. 그들과 통화 이후에 갑작스레 기분이 다운됐다. 원래는 도서관으로 향할 계획이었으나 전부 취소하고 초콜릿과 침대에 내 몸을 던졌다. 스트레스받을 때는 보다 정갈한 음식과 걷기로 내 기분을 완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인간의 감정은 생각보다 컨트롤하기 힘들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 하루를 망친 원인이 나의 엄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아들 기분 생각해 줘서 듣기 좋은 말만 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나는 내가 듣기 싫은 말을 들었다는 이유로 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하루를 버렸다. 냉정하게 말하면 말이다. 기분도 상하고 자존심도 상한다만 그게 사실이니 뭐 어쩌겠는가. 위에서 변기 업체 선정도 특정 업체로 도배되어 있어 쉽지 않다고 했다만 사실 시간만 들이고 조금만 발품을 팔면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으로 변기를 고칠 수 있었으리라. 내가 몰랐던 건, 장비가 투입되는 단계별로 비용이 가산된다는 것. 그 정보를 몰랐기 때문에 막상 기사님이 왔는데 추가 비용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는 이유로 일단 기사님을 돌려보내기가 내게는 쉽지 않았다.
모든 비용은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온다. 그리고 서비스나 재화의 비용이 저렴해진다는 건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이 완화된다는 의미다. 나는 변기 수리 프로세스에 대해 무지했다. 그것이 내가 15만 원이라는 큰 돈을 들인 이유다. 하지만 다음에 똑같은 상황에서 변기를 수리한다면 15만 원보다는 싸게 할 자신이 있다. 비용 청구에 대한 프로세스를 학습했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자와 나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이 처음보다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 학습비용이 다소 비쌌다는 게 다소 아쉬운 대목이지만.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고 과거의 의사결정의 합이 지금의 나이다. 변화는 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내 기분을 낫게 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해서 자위하지 말자. 그냥 받아들이자. 아프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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