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는 당뇨 2형을 앓고 있는 중이다. (그는 배가 불룩 튀어나온 반면 팔다리는 매우 가늘다. 전형적인 당뇨 환자의 체형이다) 그래서 매일 당뇨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는 당뇨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는 식단 조절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아마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언제까지 살지도 모르는 마당에 그냥 즐기다가 가자는 게 그의 기본적인 마인드셋이다. 그래서 그는 혈당 관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밤에 혈당 스파이크를 발생시키는 라면이나 초콜릿 등을 주저 없이 먹는다. 내가 보기에는 가히 당 중독이라고 할 만한 듯하다. 솔직히 걱정된다. 내 아빠가 혈당 관리를 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은 오로지 당뇨약 복용이 전부이다. 내가 의학적 지식이 없는지라 정년 약 복용만 하면 혈당 관리가 가능한지 잘 모르겠으나, 그게 가능하다면 세상에 당뇨 환자가 이리 많은 건 왜 그럴까? 그는 내게 자주 말하고는 한다. 죽으면 다 끝이라고.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즐겨야 한다고. 글쎄. 나는 솔직히 의문이다. 죽으면 끝이라고 하지만, 죽는 과정이 정말 나의 아빠가 바라는 대로 고통 없이 진행될까? 병상에서 몇 년 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고통받다가 죽음을 맞는 이들도 적지 않지 않은가. 나는 걱정된다. 나의 아빠가 그런 죽음을 맞게 될까 봐. 가끔 보면 아빠는 당, 아니 탄수화물에 중독된 나머지 자제력을 잃은 것처럼 행동한다. 가히 중독자라고 해도 될 듯하다.
나도 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음식을 조절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의 의지는 너무나 나약한 반면, 우리의 입맛을 유혹하는 화학첨가물은 날이 갈수록 그 발전 속도가 경이로울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먹으면 또 얼마나 맛있는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애초에 주변에 두지 않아야 할 터인데, 내가 말에는 그의 행동을 바꾸게 할 힘이 없다. 처음에는 귀찮은 잔소리이고 지속되면 폭력이다. 그래서 그에게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바뀌지 않을뿐더러 폭력으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인체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인체가 견딜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의 아빠의 음식 습관을 매일 보다 보면 자신의 몸과 내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특정 임계점에서 고통스럽다는 보장도 없다. 세상에는 담배나 술 같은 몸에 해로운 행위를 죽을 때까지 하는데 잔병치레 없이 죽음을 맞는 이가 드물기는 하지만 있지 않은가. 확률적으로는 낮지만 말이다. 과연 나의 아빠가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내 아빠가 건강한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는 도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확률적 우위에서 베팅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먹는 것이 바로 그 사람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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