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최재천 씨가 각각의 개별 주제에 대해 그의 생각을 Darwinism과 연계해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그 과정에서 최재천 씨가 다윈이 빌려준 안경을 끼고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지 그의 평소 생각을 엿볼 수 있어 매우 좋았다. 하지만 이 글은 이 책에 대한 요약 내지는 느낀 바보다는 내가 왜 이 책에 다다랐는지를 설명하고 싶다. ('다다랐다'라고 표현하니 되게 있어 보이지만 사실 우연찮게 읽었다)
현대 세계를 살아가면서 자원을 확보하는 데 혹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도전(실행력)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거창한 도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사 조금씩 도전한다. 낯선 곳으로 탐험을 떠나기도 하고, 사업을 하고자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기도 한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내가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처음에는 나에게는 작은 도전이었다. 글쓰기를 해본 경험이 없어 쓸 말도 없는데 꾸역꾸역 쓰려고 하니 그 과정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왜 도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나의 아빠와 누나 때문이다.
나의 아빠와 누나는 행동 성향이 상당히 비슷하다. 둘 모두 여행하는 것을 즐기며 낯선 곳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을 비교적 쉽게 한다. 그들은 나에 비하면 다소 도전적인 성향을 가졌다. 반면 나는 엄마와 닮았다. 나의 엄마와 나는 비교적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듯하다.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그저 20년 간 같이 살면서 느낀 나의 주관적 느낌이다) 즉, 나의 아빠와 그의 딸은 나의 엄마와 나보다 도전에 대한 역치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왜 똑같은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데 그 개체들 각각은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도전 정신이 강한 사람을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그들의 성향을 닮고 싶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성향, 즉 타인보다 더 많은 도전을 추구하는 성향은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니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 도전적인 성향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수렵채집인이 활동할 시기에는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아는 바는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도전적인 성향이 남들보다 더 강한 사람은 필히 오래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자라는 동물이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볼 일이 많지도 않겠지만 구태여 그 녀석을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녀석이 굶어 있는 상태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호기심과 도전적인 성향이 강한 수렵채집인 A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멋진 갈기와 우렁찬 울음소리에 호기심을 느껴 그것과 대화하고 싶어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그 혹은 그녀의 생존은 담보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그녀)는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기회를 스스로 박탈했다. 사실 수렵채집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도전에 대한 결과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은가.
그렇다면 도전적인 성향을 가진 이는 전부 다 멸종하고 현재 생존한 인류 모두는 전부 겁쟁이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모두 겁쟁이다. 세계에 대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축적한 지금에 와서도 호모 사피엔스 개체 중 상당 부분은 겁쟁이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호기심과 도전정신은 세계의 비효율성을 해결하고 더 많은 자원과 번식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의 창으로 작용하지만 우리는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무섭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죽음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런 유전자의 압제를 거역하고 시장의 비효율성을 해결하고자, 아니면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도전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도전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이들이 남긴 유산 속에서 살고 있다. 사자가 위험하다는 것은 그전에 사자에 접근한 이가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도전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다. 이들은 유전자의 압제에 나름대로 자신만의 거부 방법을 찾은 돌연변이일까? 아직까지 그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현대 세계에서 도전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더 많은 번식 기회가 있음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실패해도 생물학적으로 죽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도전 역치가 왜 이리 높은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답을 유전자에서 찾으려 했다. 그리고 질문을 하다 보니 다윈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신을 암살 시도한 이에게 다다랐다. 왜 우리는 이 세계에 태어났는가. 왜 우리는 행복해져야 하는가. 유전자란 무엇인가. 이제는 그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다. 예전부터 나는 내가 왜 이 세계에 태어났는지 뭔가 거창하고 운명론적 답을 기대했다. 본인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그저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지나가는 운반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행복이란 그저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느끼는 부산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허무하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이 세계에 태어난 목적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원래 이리도 허무한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허무주의에 빠져 염세적으로 살지는 않으리라. 우리는 지구 역사상 최초로 유전자라는 존재를 밝혀냈고 부분적으로 그들의 압제에 거부하는 최초의 생명체이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태어난 목적대로 살아가련다. 그리고 거부하리라. 생존과 번식을 위해 내가 느낄 수 있는 최대량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도전도 할 것이다. 무섭지만 나는 그 압제에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도전하자. 무섭지만 죽을 가능성은 거의 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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