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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 혁명 (김용남)

깡칡힌 2023. 6. 2. 17:21

소액주주 혁명 (김용남)

내가 좋아하는 주식농부 박영옥 씨가 이 책을 읽었다고 하길래 대한민국 주식 시장의 오피니언 리더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냉큼 구매했다. 지금은 그 색채가 옅어졌지만 내 정치적 성향은 좌파에 가깝다. (갑자기 정치 성향을?? 뜬금없다!) 정치에 관심이 꽤 많았던지라 저자인 김용남 씨를 정치 방송에서 가끔씩 볼 수 있었는데 사실 나는 정치인 김용남을 그리 좋아하지 못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국민의힘 계열의 정치인이니까 그가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잘 듣지 않은 채 그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국민의힘 계열의 정치인들은 내 상식에 벗어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정치적으로 좌파에 가까운 이유는 그들이 하는 얘기가 더 도덕적이고 그리고 옳다고 느껴서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좌파 정치인들 역시 그 대다수가 직업 정치인 즉, 국민들이 좋아할 만한, 감정적으로 동요될 만한 달콤한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그렇다. 나는 선동당했던 것이다. 그들이 주장이 말로는 매우 도덕적으로 들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도덕적으로 옳아 보이는 주장이 항상 옳은 게 아님을 이제는 경험적으로 안다. 도덕적인 척하는 놈 치고 도덕적인 놈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도덕이 항상 옳은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 속에 포장하는 데 대단히 능숙한 사람들이다. 도덕은 단지 그 포장지 재료 중 하나일 뿐이다. 좀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정치적 이익에만 관심 있는 줄 알았던 김용남 씨가 '소액주주 혁명'이라는 책을 낸 것을 보고 다소 의외였다. 그가 우리나라 자본 시장에 이리 관심이 많았다니, 그리고 그 식견이 이리 깊었다니. 그가 하는 얘기 대부분은 나 역시 매우 공감하고 그 해결책 역시 대부분 동의한다. 책의 콘텐츠와는 상관없이 나는 다시 한번 반성을 했다. 사람에게 덧씌워진 편견은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정치인이 있구나. 반성을 많이 했다.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주식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참여하는 시장은 한국 시장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 시장에 불신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왜 우리 나라 주식 시장은 몇 년째 박스피를 탈출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왜 전체 지분 중에 매우 소규모 지분을 가진 일가가 회사를 지배하는가.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체념한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듯한다. 뭔가 잘못됐다. 서민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수단인 자본시장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니. 이제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들어보자. 결국은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대부분의 혁명은 Bottom-Up이다.

 

한국 주식 시장은 대단히 기형적인 구조다. 소수의 오너 일가(사실 오너라는 표현도 잘못됐다. 공개 기업에 주인은 한 가문일 수 없다. 하지만 이해를 위해 여기서는 오너 일가라고 표현하겠다)가 기업 이익을 편취해도 쉬쉬하거나 아니면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로 그친다. 그리고 피해는 언제나 나머지 주주들 몫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그렇게 하는 게 오너 일가에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처벌은 약한 반면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매우 크다. 그들에게 도덕을 요구하지 말자. 돈 앞에 사람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니 말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몇 가지 문제만 알아보자. 첫 번째로 배당이다. 왜 우리나라 기업들은 배당에 그렇게 인색할까? 기업 경영진의 주장은 이러하다. "배당을 하는 대신, 미래 먹거리 혹은 기업 경쟁력 강화에 투자를 함으로써 주주 가치 제고에 힘쓰겠다." 혹은 "향후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불확실성에 대비해 배당 대신 현금을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아니, 어떻게 보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은 항상 투자하고 미래는 항상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즉, 저 주장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이제는 배당을 좀 하자. 기업 경영진들이 배당을 하지 않는 이유는 대주주 즉 오너 일가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오너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아직도 공개 기업인 회사가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는 경향(언론에서도 오너 일가라고 표현해주지 않나) 이 매우 강해보인다. 그리고 비단 사람이라면 자기가 만들었거나 자기 부모님이 만든 회사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음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그래서 회사가 벌어들인 돈을 배당을 통해 다른 사람과 나누기 싫은 것이다. 자기 거니까 말이다! 그들에게 다른 주주란 회사가 증자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들의 쓸모는 기업 공개를 할 때 혹은 향후 증자를 할 때뿐이다.

 

하. 지. 만 이렇게 말하면 매우 편협하고 매몰차게 들릴 수 있으니, 오너 일가 입장도 생각을 해주자. 자, 좋다. 그들 역시 배당을 통해 이익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자신들이 대주주니 배당률이 셀수록 그들 주머니는 더욱 두툼해진다. 그러나 문제가 한 가지 있다. 세금이 너무 세다는 것이다! 배당으로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분배하려니, 대주주인 본인들은 배당받는 금액대가 커서 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 이미 법인세를 납부했는데, 거기에 반을 다시 세금으로 뜯긴다니... 내가 생각해도 못마땅해할 것 같다. 심정적으로는 그들의 결정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오너 일가는 배당을 하는 대신, 자신들이 경영진으로 참여함으로써 매우 높은 금액을 연봉으로 받아간다. 연봉으로 받는 게 배당으로 받을 때보다 세금적으로 덜 뜯기니 그들 입장에서 보면 꽤나 합리적인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로 인해 피해자가 생긴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배당을 하지 않으면 좋은 점이 또 있다. 기업이 주주들을 홀대하고 있으니 실망한 주주들은 손실을 보고 주식을 판다. 그러면 주가가 떨어진다. 주가가 떨어지니 오너 일가도 자산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나쁜 일이 아니다. 무슨 말이냐고? 우리나라는 상속을 할 때 주식 가격을 기준을 상속세를 매긴다. 즉, 주가가 낮을 때 상속하면 그만큼 상속세를 아낄 수 있다. 소유와 경영이 일체 된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오너 일가인 대주주는 일반 주주들과 그 이해관계가 꽤나 다르다. (그래서 주식 회사 시가 평가 제도가 필요하다)

 

자사주 역시 비슷하다. 자사주를 매입하고 소각하면 기업의 절대 주식 수가 감소하므로 자사주 소각은 주주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우리 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사주를 사기만 하고 소각은 하지 않는다. 가지고 있어도 어차피 자사주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니 똑같은 거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갖고 있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즉, 자사주는 그 자체로는 의결권이 없지만, 기업 분할을 통해 자사주 역시 두 개로 분할돼, 분할된 기업들끼리 자사주를 맞바꾸면 자사주는 의결권은 살아난다. 오너 일가는 손 안 대고 기업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다. 일명 자사주의 마법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사실 자사주를 갖고 있는 걸 법으로 금지시켜도 자사주를 통한 지배권 강화는 우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기업 분할을 통해서 자사주 맞바꾸기가 금지되면 그냥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가 기업 분할 시, 지주 회사 주식을 매입하면 된다. 분할 시 기업 자산을 어디로 귀속시킬지는 기업 마음이니 말이다)

 

배당과 자사주 문제 말고도 일감 몰아주기(소위 터널링), 쪼개기 상장, 주식회사 시가 평가 등 우리나라 주식 시장이 망가진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 원인 역시 대부분 하나(거시적으로 보면)로 귀결된다. 바로 소액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보호 시스템의 미비다. 오너 일가가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을 통해 지배권 강화를 통해 이익을 본 사이 손해는 누가 보았는가? 그렇다. 소액 주주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주는 기업 가치 하락의 손해를 봤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대주주들이 이런 행동을 감행한 이유는 행동의 손해보다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너무 커서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그래서 그 유인을 줄이기 위해서 그들이 감당할 손해를 키워야 한다. 지금은 이익과 손해비가 이익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그 기울기를 바꿔야 한다. 즉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을 수 있게 운동장 180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수단이 바로 법이다.

 

우리나라 상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사들은 회사의 의사결정 집단, 즉 경영진이다. 회사의 경영진은 주주총회에서 과반을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업의 기형적인 지배구조 때문에 매우 적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대주주가 사실상 회사 의결권 절반 이상을 휘둘르고 있다. 그래서 사실상 대주주가 회사 경영진들을 뽑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는 말이다. 다시 상법으로 가보자. 이사들은 회사를 위하여 일해야 한다.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시, 그들은 자본시장법에 의해 처벌받는다. 하지만 여기서 애매한 게 있다. 회사는 주주랑 동일한 집단인가? 상식적으로는 그런 거 같다. 주식회사의 주인이 주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쉽게도 이 상식이 먹혀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법은 주주와 회사를 다르게 취급한다. 그래서 주주의 손해는 회사의 손해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쪼개기 상장을 통해 회사에 많은 돈을 들여오는 것은 분명 회사에게는 이익이다. 하지만 대주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은? 투자금 유치를 위한 증자로 인해 나의 지분가치가 희석되었기 때문에 결코 이득이 아니다. 맞다. 매우 큰 손해를 입는다. 이렇듯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은 반드시 등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주주에게 손해를 입혀도 회사에 사실상 대주주의 이익에만 충성하면 처벌받지 않는다. 이 법을 바꿔야 한다. 지극히 상식으로만 판단하면 될 법조문에 '주주'라는 단어를 추가해야 한다. 즉 다음과 같이 상법을 바꿔야 한다.

 

이사는 '기업과 모든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바뀐 상법에는 '모든 주주'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다. 이렇게 법이 개정된다면 회사 경영진들도 무조건적으로 대주주에게 충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이 나머지 다른 주주에게 피해가 가면 그들 역시 배임 등으로 처벌받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여러가지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문제에 대해서 다룬다. 하나하나가 굉장히 공감 가는 이슈다. 그리고 그 문제 대부분의 원인은 법적 시스템 미비에서 기인한다. 앞서 말했듯, 대주주가 편법을 저지를 유인이 너무 크다. 법을 바꿔야 우리나라도 기업들 거버넌스도 선진적으로 바뀔 것이며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나라 주식 시장 역시 미국처럼 장기 우상향할 것임을 이 책의 저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시스템의 완비가 반드시 선진 시장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법적 시스템을 완비함과 동시에 주식 투자자로서 우리의 의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투자자들의 오랜 자본시장의 불신으로 인해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주식 시장은 시세차익만을 바라는 투자 문화가 만연해 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시스템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선진시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주식을 시세차익만을 노리는 투자 수단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의식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 주식 투자란 기업이 어려울 때 나의 자본을 투자하고 기업이 성장할 때 그 성장 과실을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으리라. 나 역시 아직까지 이런 마인드로 투자에 성공해 본 바가 없어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리고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다소 꿈같이 들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의식이 이 방향으로 조금만 나아간다면 지금보다는 더 따뜻한 주식 시장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확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