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다소 조폭 문화와 비슷한 '형님 문화'라는 게 존재한다. 지금 젊은 세대는 그 색채가 다소 옅어지긴 하였으나, 아직까지 우리는 상대방과 나의 관계를 정의할 때 '나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나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방과 나는 단순히 누가 더 빨리 태어났느냐로 관계에 점수가 매겨지며 그 과정에서 미묘한 상하관계가 형성된다. 더 빨리 태어난 사람, 즉 '형님' 정체성에 당첨된 사람은 '동생'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할 것 같고, 밥값도 부담해야 할 것 같은 의무를 암묵적으로 지게 된다. 물론 아무도 강요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강요받은 문화적 유전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나이라는 건 우리에게 꽤나 독특한 사고방식을 선사해준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형은 동생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밥값도 형님 몫이다. 반대로 동생은 형님의 울타리 내에서만 행동해야 한다. 형님의 권위에 도전해서는 안 되며, 비록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형님의 뜻에 동의한다는 암묵적인 사인을 지속적으로 보내줘야 한다.
관계 정의를 나이로 하는 문화권에 살다보니, 나는 언제부터인가 상대방을 판단할 때 나이를 제일 먼저 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과 처음 관계를 맺으면,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나보다 능력이 못하겠거니 판단하는 것은 물론이요, 같이 식사를 할 때도 내가 내야 한다는 암묵적인 책임 같은 게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거기다가 나이가 어린데도 객관적인 능력이 나보다 뛰어나면 내면에서 그를 깎아내려는 시도가 시작된다. 만일 실패할 경우 그(그녀)와 관계 맺는 걸 중단한다. 자위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본인보다 나이가 많으며 실제로 능력도 더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안도의 감정이 내면에 차오른다. 그(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현재 나의 부족한 능력은 당연하며, 나는 그(그녀)의 울타리 내에서 그(그녀)의 권위에 복종하는 게 당연해진다.
오래 살았다는 건, 긴 시간 생존했다는 증거는 될 수 있겠으나, 더 많은 경험이나 지식을 갖추었음을 담보하지 못함에도 우리의 자아는 왜 이리 비합리적인 판단을 할까? (아, 우리의 자아라 해서 죄송하다. 나의 자아는 적어도 그런 듯하다) 선조로부터 그(그녀)의 신체적 유전자만 물려받은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문화적 유전자도 함께 물려받은 모양이다. 우리의 행동은 대부분 유전자에 목적에 의해 제한되어 있지만, 그 제한 안에는 다시 한번 문화적 유전자인 밈이 한 번 더 선을 그어놓은 듯하다. (둘 중 어느 것의 넓이가 더 클까?) 나이의 많고 적음이 관계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규정한다니. 참으로 우습다. 그리고 그 밈에 세뇌당한 나 역시 우스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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