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2023

겁쟁이의 하소연

깡칡힌 2023. 5. 14. 13:46

나는 요즘 들어 유전자에 관심이 많다. 나를 더 잘 알고 싶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나의 현재 모습에 불만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현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한 가지 꼽으라면 실행력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표현으로 도전이 있겠다)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무엇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일까? 바로 생존과 번식이다. 우리는 의식하고 있지 못하겠지만 생명체의 가장 본질적인 목표는 생존 그리고 나아가 번식이다. 우리가 ['행복해지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섹스를 하고 싶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싶다', '출세하고 싶다', '많은 자원을 갖고 싶다',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하고 싶다'] 같은 목표를 개인 차원에서 설정하는 것 역시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위에서 현대 세계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중요한 능력을 실행력이라고 꼽았지만 생명체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능력은 시대마다 달랐다. 시곗바늘을 조금만 과거로 돌려보자. 우리는 수렵채집인이 활동하는 시대에 와 있다. 수렵채집인이 활동하는 이 시대에는 실행력 (다른 말로 도전적인 성향)은 생존에 크게 유리하지 않았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 앞에 색깔이 알록달록한 버섯이 있다. 도전적인 성향을 가진 수렵채집인 A 씨는 이 버섯을 맛보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웬걸! 이 버섯에는 청산가리에 준하는 독성이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독버섯을 맛본 수렵채집인 A 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그(그녀)는 본인의 유전자를 남기지 못한 채 생명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제1의 법칙인 생존의 법칙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반면, 수렵채집인 B 씨는 평소에 겁이 많고 새로운 도전을 꺼리기는 겁쟁이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B 씨 눈앞에 똑같은 독버섯이 등장한다. A 씨와 달리 B 씨는 겁이 많기 때문에 이 버섯을 먹는 걸 꺼려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맛이 궁금했는지, 맛을 볼까 하다가 특유의 겁쟁이 기질이 발동해 그만두기로 한다. 그는 알까? 그의 성향이 그의 목숨을 살렸다는 걸.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렵채집인 시대에는 도전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은 생존하는 데 매우 불리했던 반면, 나같이 겁쟁이 성향을 가진 이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인들이여 본인이 겁쟁이 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주눅 들지 말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겁쟁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겁쟁이 성향이라고 해서 반드시 열등한 것도 아니다. 시대에 따라 다른 것뿐이다)

 

어떻게 보면 도전하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 돌연변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선조들의 유산을 거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돌연변이들 때문에 발전했다. 독버섯을 먹은 수렵채집인 A 씨가 있었기에 우리는 해당 버섯에 독이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알게 됐고, 페니실린을 발명할 수 있었다. 즉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겁쟁이 성향이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됐음은 변함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 경향성이 많이 바뀐 거 같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먼저 도전한다고 해서 죽을 위험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오히려 도전하는 성향을 가진 이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해 자원을 차지할 가능성이 많아졌다. 도전적인 성향이 강했던 손주은 씨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온라인 강의를 시도해 온라인 교육 시장의 비효율성을 해소했고 그 결과로 그는 더 많은 자원에 접근이 가능했다. 

 

나는 예전부터 "그냥 해!"라는 말이 참 못마땅했다. 그냥 하는 것조차도 내게는 참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부러웠다. 앞뒤 재지 않고 그냥 빠르게 시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는 사람들. 저 사람들과 나의 차이는 뭐지?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다면 내가 그들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한 거 아닌가?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리. 세상은 이렇게 생겨먹었고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나 역시 많은 자원에 접근해 생존하고 나아가 번식을 해야 한다는 유전자의 명령을 수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내가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니 말이다. 그러니 절망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런 유의 지식을 공부하고 탐색하는 것 역시 다른 이들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하나의 작은 '도전'이다. 이렇게 작은 도전을 축적하다 보면 나도 조금은 내 안의 변이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때는 주저없이 이생망을 외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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