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현실 정치에서 완전히 눈을 떼지는 못하는 애매한 포지션에 있다. 하지만 요즘 따라 천천히 그 관심조차도 줄이려고 노력하려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진다고 바꿀 수도 없을뿐더러(바꿀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만) 내 소중한 시간을 정치꾼들이 하는 헛소리를 듣는 데 사용하는 게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다. 나는 2016년 때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필두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하는 듣기 좋은 말에 선동된 사람이다. 좌파들이 하는 말은 전부 옳아보였고 도덕적으로 판단해 보아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그들에게 나는 표를 줬다. 후회한다. 하지만 자위를 해본다. '그들이 아니라 반대쪽에 표를 줬다면 과연 달라졌을까?'
현실 정치 관련 책은 거의 읽지 않는 나지만,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이준석 씨가 책을 냈다고 하길래 냉큼 빌려서 읽었다. 그는 똑똑하다. 아마 스스로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 똑똑함을 자신이 알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언론에 노출된 모습을 보자면 그는 굉장히 자신감이 넘쳐보인다. 때로는 과하게 말이다. 그리고 과도한 자신감이 가끔씩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소위 정치 선배들한테 밑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젊은 세대인 내가 들어도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을 그는 자주 하는데, 그 주장이 이미 기득권화된 고매하신 정치 선배님의 이익을 하필 침해하는 바람에 그는 한동안 중앙 정치에서 퇴출당했고 지금은 그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다. 이 책도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은 읽기 잘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책 초반부에는 자신이 왜 중앙 정치 무대에서 퇴출 당했고, 어떤 불이익을 겪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많았다. 지루했고 그냥 '나 억울해요'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글 중간중간에 그런 유의 글이 삽입돼 있다. 그러나 그냥 넘어갔다.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을 테니까. 아니면 그는 알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고생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판에는 아직도 논리나 타당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의 역학 관계로 작용하는 폭력이 만연해 있다고 말이다.
과거는 듣고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루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정당 시스템, 선거 전략, 젠더 문제, 데이터 산업, 주택의 문제, 지방 살리기, 차별에 대해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그가 평소에 한 고찰에 대해 엿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내가 대한민국 모든 정치인의 사고 체계에 들어가 보지 않아서 그들이 평소 생각하는 바를 잘은 모르겠으나 이준석 씨처럼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이준석 씨의 완전한 팬이 되기는 힘들다.
예전에는 좌파 정치인들의 눈물의 자아내는 현란한 말솜씨에 감화되어 그들의 팬이 되고는 하였지만, 그것은 나 같이 멍청한 놈의 표를 갈취하기 위한 그들의 음흉한 전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위해서'라는 말을 달고 사는 놈이 배척해야 될 정치인 1순위임을 잊지 말자.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이기적이다. 정치인 역시도 그 이기적인 인간이며 어떻게 보면 개인의 이익을 더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집단이다. 다만, 남들보다 더 두꺼운 포장지에 잘 감쌌을 뿐이다. 그래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시민과 정치인의 관계가 팬-스타의 관계가 되면 곤란하다. 우리는 그들과 거래를 한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표와 명예 자산을 준 대신, 그들은 우리들이 잘 먹고 잘살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요즘 정치를 보면, 표와 명예를 가져가는 동시에 개인의 안녕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이들이 많아서 걱정이다. 뭐, 어쩌겠는가. 그들도 이기적인 인간인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정치인들을 믿지 않는다. 이준석 씨의 생각에는 동의하는 바가 많지만 그 역시 정치인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인간이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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